◀ 1. 주보 성 김대건 동상과 성전 전경. 김대건 신부가 거센 풍랑을 헤치고 한국에 들어올 때 타고 온 배 '라파엘호'를 형상화했다.
2. 성전 제단 왼쪽 편에 설치된 감실 겸 성인 유해 안치소.
3.대형 십자가 아래 안치된 허인백(오른쪽부터), 김종륜, 이양등 순교자 묘소.
4. 거대한 배 안과 흡사한 성전 내부는 화려한 장식이 없이 단아한 모습으로 순교자들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
현재 세 순교자는 한국교회 차원의 시복재판이 진행 중인 시복시성 대상자 124위에 포함돼 있다.
신앙선조 넋과 얼이 서린 '순교성지
대구시 동구 신천3동 850-3에 있는 대구대교구 복자성당. 동대구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성당 입구에 들어서려니 거대한 돌기둥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조선시대 죄인 목에 채우던 형틀(칼) 모양 그대로 정문 양쪽에 서 있는 돌기둥에는 '복자성당', '순교성지'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이곳이 하느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 때문에 목숨마저 내놓은 신앙선조들의 넋과 얼이 서린 현장임을 한눈에 알게 해준다.
옷 매무새를 한번 더 가다듬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이번에는 푸른 잔디 위에 우뚝 선 대형 십자가와 그 아래 안치된 묘소 3개가 눈길을 끈다. 자세히 보니 병인박해(1866년)를 피해 경주에 살다가 체포돼 순교한 허인백(야고보, 1821~1868), 김종륜(루가, ? ~1868), 이양등(베드로, ? ~1868) 세 분 유해를 모신 묘역이다.
김해에 살던 허인백은 25살에 입교, 언양으로 이사해 살다가 1860년 경신박해때 체포돼 고초를 당한 뒤 풀려나 이양등이 공소회장으로 있던 간월산 죽령리 공소지역으로 왔고, 충청도 출신인 김종륜도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오면서 세 명이 만나게 됐다. 다시 병인박해가 시작되자 세 명은 가족을 데리고 경주 산내면 단석산으로 피신, 범굴에 숨어 나무그릇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유지했으나 결국 1868년 포졸들에게 체포돼 8월15일 울산 장대골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잠시 순교자들의 삶을 묵상한 뒤 발길을 옮기면서 '성당 이름을 복자로 짓고 성당 구내에 순교자묘소를 안치한 것 사이에 무슨 연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의문은 본당 성지관리위원장 이상수(아우구스티노)씨의 말을 듣는 순간 쉽게 풀렸다.
"1964년 주교회의가 병인박해 순교자 중 24위를 선정, 시복운동을 벌이면서 각 교구별로 순교자 기념성당을 짓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대구대교구도 교구민 성금을 모아 병인박해 100돌이 되는 1966년 복자성당이라는 이름으로 기념성당을 건축키로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공사가 지연돼 결국 1970년 완공됐지요. 이후 1973년 대구 감천리 교회묘지에 안장돼 있던 세 분 순교자 유해를 본당으로 이장한 것입니다."
순교자 묘역 오른쪽으로 난 언덕길을 올라서자 조금 독특한 구조로 세워진 성당이 눈길을 끈다. 유달리 창문이 많고 지붕 양쪽 끝이 하늘을 향해 들린듯한 성당 구조를 의아해하자 본당주임 박형진 신부가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우리 본당은 설립 당시 김대건 성인을 주보로 모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설계를 맡았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알빈 신부가 김대건 성인이 중국에서 거센 풍랑을 헤치며 한국에 타고 온 배 '라파엘호'를 형상화해 성당을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당 바로 앞에는 성 김대건 동상이 순교자 묘역을 내려다보는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박 신부 안내로 들어선 성전은 거대한 배 안과 흡사했다. 화려한 장식이 없는 단아한 내부가 오히려 순교자들의 삶을 표현한 듯하다. 제대 왼쪽 편에는 감실을 겸한 성인유해 안치소가 있다. 여기에는 성 김대건 신부의 발과 대퇴골, 성 앵베르 주교의 엉덩이 뼈, 성 모방 신부의 두개골, 성 샤스탕 신부의 치아 등이 안치돼 있다.
안치소 겸 감실 앞에 무릎을 꿇자 순교자 묘역 옆 순교자 비에 적힌 문구가 가슴 한켠에서 기도가 되어 떠오른다. "생명을 바쳐 당신을 증거 하신 이들이여, 당신의 영광 속에서 길이 평안하소서. 저희들 후손도 그 진실한 용기를 갖도록 전구하여 주소서."
본당은 지난 2002년 9월 신자들 자체 노력으로 모금한 3억원으로 순교자묘역 일대를 새롭게 정비, 성역화작업을 마무리했다. 순교자묘지가 땅바닥에 밀착돼 잘 드러나지 않고 시멘트 포장된 묘지 주변이 순례객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등 성지로서 부족한 점이 있었기 때문.
이에 따라 본당은 순교자묘소가 잘 드러나도록 땅을 1m 이상 깎아내는 공사를 했고, 묘소 주변은 잔디를 깔아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몄다. 묘역을 가로지르던 전선을 땅속에 묻어 주변을 깨끗이 정리했으며, 십자가의 길 14처도 새로 조성했다. 녹지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인근 지역 상황을 고려, 지역민과 순례객들이 쉴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을 만들고자 묘역 주변에 소나무, 산딸나무, 팽나무 등 아름드리 토종 나무와 유실수 50여 그루를 심었고, 팔각정도 세웠다.
최근에는 타교구에서 찾아오는 대규모 순례단을 맞기 위해 대형버스 10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도 새롭게 마련해 놓았다. 이와 함께 복자성당 역사와 세 분 순교자 삶과 영성 등을 소개하는 23분짜리 영상물을 DVD로 제작, 순례객이 찾아오면 안내자료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설까. 지난 2000년 대희년에는 순례성당으로 지정되기도 한 복자성당은 매년 연인원 3만여명이 찾아 순교자묘역을 참배하며 순교정신을 되새기는 명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주임신부는 "본당으로서는 드물게 순교자 3위 유해는 물론 성인품에 오른 김대건 신부ㆍ앵베르 주교ㆍ모방 신부ㆍ샤스탕 신부 유해를 직접 모시고 있는 복자성당은 순교적 삶과 영성을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의 고향'"이라면서 "대형 주차장도 마련한만큼 서울을 비롯한 타교구에서도 많은 이들이 찾아 순례하는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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