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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서의인물(구약)

[50] 대건축가 느헤미야

by 세포네 2005.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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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하갈랴의 아들로 아르닥사싸 황제의 궁내에서 관리로 살고 있었다. 어느날 동생 하나니가 유다에서 돌아와 고향 소식을 전했다.

“그래,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니?”

“형님, 말도 마십시오. 포로생활 후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그곳에서 몹시 고생하며 수모를 당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진 채로 있고 성문들도 불에 탄 채 그대로 있습니다. 너무 흉물스러워 눈뜨고 못 볼 지경입니다.”

그 말을 듣고 느헤미야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는 슬피 울며 하느님께 단식하며 기도를 드렸다.

“야훼 하느님,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한결같은 사랑으로 지켜 주시는 분이시여, 저의 기도에 귀 기울여주십시오.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건설하도록 도와주소서.”

드디어 느헤미야는 황제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감춘 채 예루살렘의 성을 다시 쌓을 방도를 모색했다. 여러번 성을 둘러본 후 유다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의 꼴이 너무 비참합니다. 예루살렘성은 무너져있고 성문은 불에 탄 채 그대로 있습니다. 어서 빨리 수모를 씻기 위해서라도 성을 다시 쌓읍시다. 그리고 내가 모시던 황제께서도 많은 도움과 편의를 주셨습니다. 어서 힘을 내어 성을 다시 건축합시다.”

“옳소!”

그런데 이것에 반대하여 빈정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신들이 와서 무얼 하겠다는 거요?”

그러나 느헤미야는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 이 일을 이루실 것이오. 우리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성 쌓는 일을 시작할 것이오. 이제 예루살렘에는 당신들에게 돌아갈 곳이 없소.”

느헤미야는 큰 뜻을 품고 마음 속에 깊이 간직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뜻을 실천했던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나 좋은 일에는 방해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내부로부터의 어려움과 외부의 방해였다. 성벽 쌓는 일을 외부 세력이 심하게 반대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그의 심복인 암몬 사람 토비야 등은 느헤미야가 하는 일을 비웃었다.

“유다놈들, 너희같이 형편없는 놈들이 무얼 한다는 거냐? 누가 내버려둘 줄 알고? 잿더미에서 성을 쌓아 다시 제사를 지낸다고? 웃기는 자식들. 이 놈들아, 여우 한마리가 올라가도 와르르 무너지겠다.”

외부의 반대와 방해뿐 아니라 내부적인 문제도 심각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문제가 컸다. “목구멍에 풀칠하려고 아들, 딸까지 잡혔다.”

“세금 낼 돈이 없어 우리 식구도 모조리 포도원에 볼모로 잡혀있다.”

느헤미야는 유지와 관리들을 모아 놓고 호되게 질책했다.

“유다인들은 모두 한겨레입니다. 우리 겨레끼리 서로 고통을 주고받으니 말이 됩니까? 우선 돈놀이를 금지토록 하시오!”

느헤미야가 이렇듯이 내외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예루살렘성 재건축에 성공한 것은 확고한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성벽 수축이 하느님의 일이며, 하느님이 원하시는 뜻이라는 신념이 있었기에 원수들의 조롱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는 것은 물론 보초를 세워 늘 적을 감시하는 철두철미한 모습을 보였다.

백성들 중에 반은 일을 하고 반은 무장하여 원수를 대적하였다. 그들은 집에서도 옷을 벗지 않고 늘 무기를 휴대하고 있었다. 또 느헤미야는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도록 이끌었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잊지 않았다.

마침내 예루살렘 성벽이 완성되어 봉헌식을 갖게 되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목욕 재계를 하고 성문에서 부정을 씻는 예식을 올렸다. 찬양대가 하느님을 찬미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 나갈 정도로 축제를 벌였다.

느헤미야는 바빌론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 백성들의 부패한 삶을 정리했다. 이방인들과 혼인을 금지시키고 안식일을 범하는 것을 막았다. 예루살렘 축성공사는 어쩌면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오히려 전쟁보다 더 많은 방해와 어려움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성전공사를 할 때 무엇보다 하느님 백성의 일치와 충정, 그리고 회개가 우선되어야 함을 느헤미야의 일생은 잘 보여주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환난을 돌파하는 강력한 지도자 역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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