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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서의인물(구약)

[47} 종교 개혁의 왕 요시아

by 세포네 2005.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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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아 왕은 여덟 살이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31년간 유다를 통치했다. 그는 특히 야훼 하느님의 눈에 드는 올바른 정치를 폈다. 왕위에 오른 지 팔년 만에 다윗의 하느님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시행했던 이교숭배정책을 과감히 뜯어고쳤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부정한 신당과 아세라 목상, 그리고 모두 우상을 치워없애라. 또 바알의 제단들을 뜯어내고 분향단을 없애라.” 요시아 왕은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그리고 그는 사반, 마야세야, 요아를 보내 야훼의 성전을 수리하도록 명령했다. 성전 수리책임을 맡은 대사제 힐키야는 성전에서 율법을 발견하고 그 책을 공보대신 사반에게 넘겼다. 그리고 사반은 그 책을 임금 앞에 나가읽었다. 왕은 그 법전의 말을 듣고 옷을 찢으며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리가 성전에서 찾아낸 율법서 대로라면 나는 과연 어찌 될 것인가? 또한 살아남아 있는 유다와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찌 될 것인가? 그 답을 야훼께 물어보시오. 우리 선조들은 이 책에 나와있는 대로 살지 못했소. 그러니까 야훼의 진노가 내리고 말 것이오.”

임금의 명을 받은 신하들은 여자예언자 훌다에게 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훌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대들이 나에게 보내신 분에게 가서 야훼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틀림없이 전하시오.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재앙이 내릴 것이다. 유다 왕 앞에서 읽은 모든 재앙이 다 내릴 것이다. 우상 숭배를 해서 내 속을 썩였으니 진노가 내릴 것이오. 그러나 너희들이 왕과 함께 무릎을 꿇고 옷을 찢고 통곡을 했으므로 나는 너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예언자의 말씀을 전해들은 요시아 왕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장로들과 모든 백성들을 소집해서 야훼의 성전으로 올라가 야훼의 성전에서 찾은 언약법전을 조목조목 다 읽어주었다. 이 법전은 후에 신명기의 토대가 된다. 그 다음에 온 백성에게 요시아 왕은 소리쳤다.

“온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들이여, 이제 우리는 야훼를 따르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계명과 훈령과 규정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언약법전에 있는 그대로 살기로 야훼와 계약을 맺는다.” 예루살렘의 모든 시민들은 그들의 선조들과 하느님이 맺은 계약대로 살게 되었다. 요시아 왕은이스라엘 전지역에서 우상들을 모조리 없애고 야훼 하느님만을 섬기게 되었다. 요시아 왕은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백성들을 인도했다. 인간 중심의 삶이 아니고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게 함으로써 종교개혁을 이루어나갔다.

요시아 왕의 개혁은 철저히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행해졌다. “이 언약법전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너희 하느님 야훼께 감사하여 과월절을 지켜라!”

성대하게 지킨 과월절 축제는 어느 시대에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과월절 축제는 바로 야훼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건져내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가족구성원이 다 모이면 포도주를 먼저 한 잔씩 마시고 다음에 식탁에 누룩없는 빵과 어린 양과 쓴 풀을 먹는다. 이 세가지는 이집트로부터 해방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먹었던 눈물과 고통의 상징이다.

다음에 구성원들 가운데 가장 나이어린 사람이 묻는다. “오늘은 다른 날의 저녁과 똑같은 저녁인데 왜 특별하게 지내야 합니까?”라고 하면, 제일 연장자가 선조들에게 이루어졌던 출애굽의 이야기를 해준다. 바로 그 자리에서 출애굽에서 이루어졌던 하느님의 능력적 역사를 다시 한번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것이 끝나면 포도주 잔을 돌려서 목을 축이고 불에 구운 어린 양을 출애굽에 나오는 것처럼 뼈를 부수지 않고 다 먹고 누룩없는 빵과 쓴 풀을 같이 먹는다. 그 다음 시편 114-118편을 합송한다. 다시 세 번째 포도주를 마시면 과월절 예식이 끝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출애굽 안에서 이루어졌던 과거의 역사가 과거로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안에서도 재현되고 있다는 생각, 즉 이런 인식 속에서 이 축제를 거행했다는 것이다.

요시아 왕은 우상과 미신들의 부패를 척결하고 지방 성소의 신당을 폐지했다. 그리고 제사장들을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봉사하게 했다.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은 인간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모든 가치와 중심을 두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그는 성실하게 개혁을 수행했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려고 노력했던 지도자였다.

종교든 정치든 개혁은 자기 스스로를 고친다는 점에서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익을 고집하는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뼈를 깎아내는 고통을 감수하지 않고는 개혁을 달성할 수 없다. 용기와 대담함이 없이는 개혁 성취는 어려운 것이다. 인기에 영합하거나 현상을 적당히 유지하려는 마음을 갖고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요시아 왕은 용기가 출중하고 정의감이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이집트 왕 느고의 군대와 싸우다 전쟁터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요시아 왕은 야훼의 법을 두려워하고, 그 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지도자였다. 그는 선대의 왕들이 꿈도 꾸지 못한 종교개혁을 이룬 인물이다. 오늘날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개혁을 이루는 지도자가 아쉽다고 하겠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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