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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서의인물(구약)

[44] 패망한 왕 아합

by 세포네 2005.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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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봇이라는 이즈르엘 사람이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원은 사마리아를 통치하던 아합왕의 별궁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어느 날 아합왕이 나봇을 불러 말했다.
"그대의 포도원이 내 별궁 근처에 있으니 나에게 팔게나. 나는 큰 정원을 만들고 싶어. 값은 후하게 쳐줄 테니 그 돈이면 아마도 더 크고 좋은 포도원을 만들 수 있을 거야. 지금 당장 현금으로 지불해줄 수도 있어. 또 다른 곳을 원하면 땅을 마련해 주겠네."

그러나 나봇은 왕의 청을 거절했다. "안될 일입니다.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이 포도원을 임금님이라 해도 돈을 받고 팔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면 저는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정말 안되겠나? "

"네, 안됩니다. 선조의 유산을 제 마음대로 처리할 수는 없지요."
"이런 답답한 사람…."

아합왕은 아무리 설득해도 요지부동인 나봇을 어쩔 수 없었다. 거절당한 아합왕은 침울한 심정이 되어 방으로 돌아왔다. 자리에 누워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쓰고 밥도 먹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거절당한 것에 몹시 마음이 상했던 것이다.

음식도 먹지 않는 아합왕에게 아내 이세벨이 와서 물었다.

"임금님, 무슨 일로 이토록 상심하셔서 음식까지 안 드십니까?"
"…."
"제발 말 좀 해보세요. 답답합니다."
"다른 게 아니고, 실은 오늘 낮에 나봇이란 사람을 만났거든…."
"그래서요?"
"그런데 내가 여차여차해서 포도원을 팔라고 해도 요지부동인 거야. 나 원! 이거 체면이 상해서…."

그러자 아내 이세벨은 왕에게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왕답게 처신하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그 포도원을 당신께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음식이나 드셔요. 네?"라고 말했다.

"아니, 당신이 무슨 재주로?"
"글쎄, 저에게 맡기시라니까요."
그 길로 이세벨은 아합의 이름으로 밀서를 써서 나봇이 살고있는 성읍의 원로들에게 보냈다.
그 밀서의 내용은 이러했다.
"단식을 선포하고 백성들 앞에 나봇을 앉히시오. 그리고 나봇이 하느님과 왕을 욕보였다고 고발하시오. 그런 후에 그를 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죽이시오. 내가 이야기한 것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실행하시오. - 아합 왕-"

원로들은 왕의 명령대로 그대로 실행했다. 그리고 이세벨에게 상황 종료를 알렸다.

그 길로 이세벨은 아합왕에게 가서 말했다.
"임금님이 원하신 포도원을 어서 차지하세요.'
"무슨 소리요?"
"나봇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아합왕은 아내의 말대로 나봇의 포도원을 접수했다. 그러자 야훼의 말씀이 엘리야 예언자를 통해 내렸다.
"사람을 죽이고 땅을 차지한 철면피같은 너에게 재앙을 내린다. 네 후손을 모두 쓸어버리고 네 가문의 씨를 말리겠다. 그리고 사악한 아내 이세벨도 개들에게 뜯겨먹고 새들이 쪼아먹게 하리라."

이 말을 들은 아합왕은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걸치고 단식에 들어갔다. 그의 기는 완전히 꺾여 늘 풀이 죽어있었다. 실제로 그 후 이세벨은 학살되고 아합의 왕자들도 나봇이 죽은 자리에서 몰살당하였다.

권력을 이용해서 남의 생명과 재물을 빼앗은 자의 최후는 이와 같이 비참한 것이다. 우유부단한 아합왕과 간악한 이세벨, 그리고 부화뇌동한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합세해 결국 무죄한 나봇을 죽인 것이다.

아합왕은 우선 지도자로서의 정의로운 마음과 결단력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부인인 이세벨이 정치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한 짓을 저지른 것이다. 권력자가 똑바로 중심을 잡지 못할 때 그 주변 인물들이 분수를 넘어서 날뛰고 행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의를 실천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없는 권력은 이미 부패한 권력이다. 주변 인물들의 사리사욕과 명예심을 채워주기에 좋은 꼴이 되고 만다.

아합왕은 이세벨이 나봇을 죽였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 단호하게 이세벨의 요구를 거절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아합왕은 사악한 이세벨의 살인에 동조하여 결국 나봇의 땅을 빼앗는 죄를 범한 것이다. 이세벨의 과잉된 충성, 그릇된 치맛바람에 결국 아합 왕가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권력을 가진 지도자가 주변 인물의 잘못으로 망하는 경우는 역사 속에서 자주 있는 일이다. 아합의 경우는 "지도자는 우선 자신의 주변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관리해야한다"는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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