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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서의인물(구약)

[41] 비운의 사제 아히멜렉

by 세포네 2005.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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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사제 아히멜렉 다윗이 사울왕의 박해를 피해 도망다니던 시절이었다. 다윗은 헐레벌떡 혼자서 놉으로 사제 아히멜렉을 찾아갔다.

"아니 어떻게 호위병도 없이 혼자 오시는 것이오?"
아히멜렉이 당황하면서 물었다. 그러자 다윗은 거짓말을 했다.
"나는 실은 왕명을 띠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임무가 임무인지라 사울왕께서는 저를보내면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소. 내 부하들과는 어느 지점에서 만나기로 했소. 그런데 혹시 먹을 것이 없습니까? 배가 고파서 그러니…."

그러자 아히멜렉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다윗의 말을 믿었다.
"지금 먹을 수 있는 떡은 없습니다. 제단에 바쳐진 거룩한 떡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선 사람이 배가 고프니 그것이라도 먹으십시오."

다윗은 야훼께 바친 제사떡을 황급히 먹었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사울의 신하인 에돔사람 도엑이라는 사람이 지켜보았다. 허기를 채운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사제님, 왕명이 급해서 칼은 물론 아무 무기도 가져오지 못했는 데 여기 혹시 칼이나 창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아니, 전쟁을 치르는 장수가 칼도 없이 떠났단 말입니까? 옛날에 장군이 죽인 블레셋 장수 골리앗의 칼을 땅에 묻어놓았는데, 그것이라도 가질 생각이 있으면 가지시오"

다윗은 그 길로 망명생활을 시작했다. 사울은 자신의 군사를 거느리고 다윗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에돔사람 도엑이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와준 것을 낱낱이 고해바쳤다.

":사제 아히멜렉이 다윗의 도망을 도왔습니다. 먹을 것도 주고 심지어 무기까지 주었습니다."
"아니, 이런 쳐 죽일 놈!"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사울은 아히멜렉을 문초하였다.
"너는 반역자다. 어찌하여 다윗과 한 통속이 되어 나에게 반기를 들었느냐?"

아히멜렉은 벌벌 떨며 자신을 변호했다.
"천부당, 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임금께 반기를 들겠습니까? 다윗은 임금의 부마가 아닙니까? 그는 임금님을 지근거리에서 신변을 보살피는 경호대장 아닙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소인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
"시끄럽다. 너와 네 일가는 몰살이다."
아히멜렉은 다윗과 반역죄를 공모했다는 죄명을 쓰고 처형당했다. 사제 85명과 놉에 살고있는 양민들, 여자, 어린이들, 심지어 젖먹이들까지 모두 칼로 쳐죽였다. 놉 전체가 피로 물들어 아비규환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많았다. 반역죄로 몰려 목숨을 잃고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뿐 아니라 집안 식구, 친척들까지도 고초를 당한, 정작 반역에 직접 가담하지 않고 우연히 연루된 이들도 많았다. 아히멜렉처럼 운이 없었던 경우일 것이다.

사실 똑같지는 않지만 오늘날에도 이런 유사한 일들이 없지 않다. 자신의 생각, 행동과는 전혀 다르게 화를 당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너무 억울할 것이다. 아히멜렉은 다윗을 따뜻하게 대해준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대개 마음이 착하고 여린 사람들은 다른이의 곤궁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쉽게 다윗의 말을 믿었다. 그의 행색이나 행동거지가 의심할 바가 많았는 데도 다윗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는 사제만 먹을 수 있는 야훼께 바친 거룩한 떡을 배가 고픈 다윗을 위해 가져다 주었다. 이런 일들이 비밀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 데도 그는 너무 쉽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에돔사람 도엑의 눈에 띄게 행동했던 아히멜렉은 약간 경솔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경솔하기보다는 마음이 착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자기와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행동과 생각이 소홀했던 것이나 다른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버린 것이 화를 불렀던 것이다.
세상일은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나 일에서도 쓸데없는 오해나 공격을 당할 빌미를 주어서는 안된다. 때로는 비밀을 지켜야 하는 것도 있다. 그것은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이를 위해서도 유익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혜롭게 판단할 일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때로는 거절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다윗을 도와 반역했다는 죄명을 쓰고 죽은 비운의 사제 아히멜렉.
그의 불행이 주는 지혜를 한번 곱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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