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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원]/묵상글

지상의 시선을 천상의 시선으로 바꿀 때 가능한 용서

by 세포네 2020. 9. 13.

 

용서를 쉽사리 하지 못하는 우리는 그래서 오늘 베드로 사도처럼

몇 번까지 용서해야 하는지 묻게 되는데, 그런 우리 자신을 우리는

한심하게 생각하거나 심지어 자신이 참 악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가 오히려 착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면 용서란 복수를 해도 시원치 않을 사람을,

막말로 하면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을 주님 말씀 때문에

그래도 용서하려는 것이니 사실은 참으로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그렇긴 하지만 용서란 마음이 착한 것만 가지고 되지 않고,

"저마다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해야만 된다는 오늘 주님 말씀처럼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야지만 되는 거라는 것이 오늘의 결론입니다.

 

그러니까 용서의 관건은 나의 마음이 사랑으로 차오르게 되는 것이고,

용서 안 되는 그를 어떻게든 용서하려고 그를 붙들고 애쓸 게 아니라

그와 상관없이 내 마음이 사랑으로 차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이 사랑으로 차오르게 할 수 있습니까?

나도 그를 놓고 싶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괴로워하면서도 붙들고 있는 것인데 어떻게 그를 놓을 수 있겠습니까?

 

첫 번째 방법은 심리학적인 방법으로서 나를 진정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용서하려고 하나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나에게 상처나 피해를 줘서 지금 내가 아프고 더 나아가 불행하기

때문인데 그 인간으로 인해 내가 불행해지지 않겠다는 사랑을 하는 겁니다.

 

나를 제일 그리고 진정 사랑하는 것은 내가 무조건 행복해지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 의해 행불행이 좌우되지 않게 하는 겁니다.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누구에 의해 상처와 피해를 입어도

도무지 불행해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나의 행복을 꼭 붙잡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완전하게 내 마음이 사랑으로 차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자신을 채우는 것입니다.

 

자가발전이나 자가 진단처럼 자가 사랑도 가능하고 의미 있지만

그 사랑만으로는 우리 마음이 사랑으로 충분히 가득 찰 수 없기에,

그리고 많은 경우 사랑하려다가 오히려 미워하게 되기 십상이기에

하느님 사랑을 받아 그 사랑으로 자신을 가득 차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비유에서 주님께서 악하다고 하신 종처럼 내게 빚진 사람을

붙들고 시비하지 않고 나의 그 많은 빚을 탕감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그 사랑에 감지덕지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해를 입은 것보다 하느님께 과분하게 덕 입었음을 더 생각한다면

우리는 행복할 것이고 인간의 잘못이나 죄에 더이상 머물지 않을 것이기에

내가 받은 상처와 피해 때문에 씩씩거리게 될 때마다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인간을 붙들고 시비하지 않고 하느님을 붙잡고 씨름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고, 신앙의 힘입니다.

야곱은 자기를 죽이려는 형을 피해 도망쳤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이제 야뽁강만 건너면 자기를 죽이려는 그 형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가족과 종들을 먼저 보내고 그날 밤 혼자 남아

밤새도록 하느님과 씨름을 하고는 축복을 받아내고서야 맙니다.

그는 자기를 죽일지도 모르는 형을 만나기에 앞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인간으로부터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만이 회개가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것이 회개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이유로 그러니까

두려움 때문에 또는 분노나 미움 때문에

인간에 머물러 있고 하느님과 하느님 사랑에 가닿지 못하는데

신앙은 이때 발휘되어야 하고

그러므로 우리가 힘든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얼른 지상의 시선을 천상의 시선으로 바꿔야 할 것입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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