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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정난주길 양반가의 딸로 태어나 신앙 때문에 노비되어 제주로 유배 ‘대정성지’로 단장한 정난주 묘소…13.8㎞ 순례길 끝에는 모슬포성당 자리 대정성지는 제주의 순례길 중 한 곳인 ‘정난주길’의 출발지다. 바다를 접해 걸을 수 있는 형제해안도로에서 바라본 산방산과 한라산. 이승환 기자 # 두 살 배기 아들 황경한을 품에 안은 정난주(마리아)가 유배길에 올랐다. 조선의 유배지 중 가장 멀다는, 중한 죄인들만이 보내진다는 제주로 가야 한다. 경기 마재 양반가 정약현의 딸은 이제 대역죄인의 아내이자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전라도 제주목 대정현의 노비가 됐다. 신유박해의 참상을 알리겠다며 배론에서 백서(帛書)를 썼던 남편 황사영(알렉시오)은 중국으로 가던 편지가 발각돼 처형당했다. 당당히 목숨 바쳐 하느님을 증거한 남편을.. 2025. 3. 9.
60.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도 바오로의 회심 발랑탱 드 불로뉴 ‘1654년 11월 23일 밤의 회심’이라 불리는 파스칼(1623-1662)의 초월적인 체험은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는 말을 남긴 유명한 철학자 파스칼은 39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인류에 남긴 영적 유산은 무척 크다. 파스칼은 11세 때 이미 ‘음향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썼고, 16세 때 유명한 수학 논문을 발표했던 천재였다. 현재 사용하는 컴퓨터의 전신인 전자계산기를 발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회개 사건은 하느님의 세례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이 초월적인 체험 이후로 파스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는 쾌락에 빠진 방탕한 생활을 완전히 끊고 신앙을 생활의 신조로 삼는 그야말로 새사람이 되었다. 그는 회심한 후 매우 어렵게 지내.. 2025. 3. 9.
59. 예수님께 베드로를 소개한 동생 안드레아 루벤스 예전에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님과 함께 그리스 성지를 순례할 때였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파트라이 지역에 가까워지자, 옆에 앉은 염 추기경님은 많이 상기한 듯 보였고 눈가엔 이슬이 살짝 비쳤다. 전승에 따르면 안드레아 사도는 파트라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 도시에 들어서자, 곳곳에 많은 X자 모양의 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안드레아 사도가 스승과 같은 십자가에 못 박힐 자격이 없다고 X자 모양의 십자가에 묶여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X자 모양의 십자가는 ‘성 안드레아 십자가’로 알려져 있다. 염 추기경님은 어두운 성당에 무릎을 꿇고 한참 동안 말없이 기도하셨다. 밖에 나오면서 평소에는 감정을 잘 안 드러내는 염 추기경은 눈가가 촉촉해져 “여기를 평생에 꼭 한번 오고 싶었어. 이제야 .. 2025. 3. 9.
(17) ‘주님’ 칭호 바오로 사도, 이방인들에게 예수를 ‘주님’이라 선포 바오로 사도는 헬레니즘 문화권에 사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주님’ 칭호를 즐겨 사용했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1650년께, 유화 디아스포라 유다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이 신앙 공동체의 주류로 자리하면서 교회 역시 상당한 변화를 겪습니다. 교회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율법 중심의 유다교 영역에서 주로 활동했다면 이때부터 헬레니즘 영역 안으로 발을 담그기 시작합니다.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다” 곧 “예수께서 메시아이시다”라고 직설적으로 고백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한 분이신 .. 2025. 3. 9.
20. 안중근 토마스 의사 가족과 빌렘 신부 그리고 청계동성당 <상> 빌렘 신부, 1896년 12월 안중근 의사 가족과 운명적 첫 만남  노르베르트 베버, ‘빌렘 신부’, 유리건판, 1911년 5월, 황해도 청계동,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프랑스인이지만 독일인으로 살아야 한 빌렘 니콜라 조제프 마리 빌렘(Nicolas Joseph Marie Wilhelm, 한국명 홍석구, 1860~1938) 신부. 안중근(1879~1910) 토마스 의사를 기억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안 의사 순국 115주기를 기념해 3월 동안 2~3차례에 걸쳐 빌렘 신부와 안중근 가족 그리고 황해도 청계동성당에 관해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가 촬영한 사진 아카이브를 소개한다. 빌렘 신부는 1860년 1월 24일 프랑스 모젤르(Moselle) 스피쉐.. 2025. 3. 5.
18. 오스트리아 멜크 베네딕도회 수도원 교회 쇄신의 롤 모델이었던 오스트리아 멜크 수도원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바하우 계곡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멜크 베네딕도회 수도원. 도나우강 암벽 위에 자리한 웅장한 수도원 단지로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무대가 된 곳이다. 출처=shutterstock 빈에서 출발해 오스트리아를 동서로 관통하는 A1 고속도로를 1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바하우 계곡을 따라 흐르는 도나우강이 보이며 고즈넉한 마을 뒤로 암벽에 우뚝 솟은 요새의 실루엣이 나타납니다. 오스트리아의 역사·신앙·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성지 멜크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매년 50만 명이 넘는 이가 이곳을 찾습니다. 그 웅장함과 수려한 자연 풍광에 매료되어 어느새인가 인터체인지로 나가게 되지요. 멜크 베네딕도회 수도원 동.. 2025. 3. 5.
19.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일제 탄압으로 1942년 폐교… 한국인 사제 105명 배출  노르베르트 베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바라본 새남터’, 유리건판, 1911년 3월, 서울,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베버 총아빠스, 거룩한 순교 역사 현양 1911년 서울 용산에는 일본인 1만여 명이 거주했다. 대부분 군인이었고, 철도와 산업체 종사자들이 뒤를 이었다. 일제는 용산개발계획을 세워 이곳을 거점으로 조선의 산업 철도를 연결하려 했다.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가 용산에 끌린 것은 그 무엇도 아니고 바로 이 땅의 거룩한 순교 역사 때문이었다. 용산과 한강 사이 형장에서 수많은 조선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위해 순교했다. 그 대표적 성지가 새남터·삼성산·당고개·절두산이다. 베버 총아빠스.. 2025. 3. 5.
17. 프랑스 아미앵 노트르담 대성당 세례자 성 요한과 성 다블뤼 주교 성유물 모신 아미앵 대성당 캉쥬 다리에서 바라본 솜강의 구도심. 중세 상인들과 수도자들이 오가던 길로, 지금은 조용한 운하와 운치 있는 골목길이 어우러져 있다. 뒤로 성 다블뤼 주교의 세례 성당인 생르 성당이 보인다. 출처=shutterstock 중세 유럽에서 왕권의 정당성은 세속적인 힘뿐만 아니라, 하느님께 부여받은 신성한 권위로 뒷받침되었습니다. 특히 프랑스 왕은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라 15세기부터 ‘가장 그리스도적인 왕(Les Rois Très-Chrétiens)’이란 칭호를 교황에게 부여받아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이를 자처했지요. 이런 프랑스 왕가의 신심이 가장 깊이 새겨진 도시 중 하나가 피카르디 지방의 수도인 아미앵입니다. 아미앵은 파리에서 북쪽으로 약 12.. 2025. 3. 5.
(16) 예루살렘 함락과 유다계 그리스도인 유다계는 쫓겨나고 이방계 그리스도인이 예루살렘 차지예루살렘 사도 회의는 교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단순히 첫 번째 열린 공의회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의 일치를 깨뜨리지 않는 놀라운 결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임을 확신했습니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과 할례가 거부되지 않듯이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과 할례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고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으로 예루살렘 교회는 안티오키아 교회와 갈라서지 않았고, 안티오키아 교회 역시 예루살렘 교회와 연대를 지속합니다. 이로써 모든 그리스도인은 율법에서 자유로운 그리스도교를 선포하기 시작했고, 사도들의 전승 안에 머물 .. 2025. 3. 5.
58. 주님에 대한 사랑이 바위처럼 단단했던 베드로 루벤스의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은 중요한 가톨릭 성지 가운데 하나이며, 로마 여행의 랜드마크가 된 곳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종교와 예술, 역사가 어우러진 세계적인 순례 장소요 박물관이다. 교회에 따르면, 기원후 67년에 순교한 로마의 초대 주교인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대성당이 건립됐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4세기이래 같은 장소에 있었는데 현재의 대성당 건설은 1506년 4월 18일 시작되어 한 세기 넘는 공사 끝에 1626년 완료되었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돌’ 또는 ‘바위’를 뜻하는 ‘페트라’(petra)에서 유래했다.(마태 16,18 참조) 성 베드로는 순교 때 스승과 같을 수 없으므로 머리를 아래로 두고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유해는 바티카누스 언덕 위.. 2025. 2. 23.
18. 하우현성당 <하> 하우현성당 교우들, 순교자들의 후손이며 박해의 산증인  노르베르트 베버, ‘하우현성당 남교우들’, 유리건판, 1911년 3월, 경기도 하우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쓰라린 빈곤 속에서도 신앙은 바위처럼 굳건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박해를 이겨내고 가톨릭 신앙을 지켜온 하우현 신자들에게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은 아직 삶에서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무엇이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를 이 황량한 산중 고독 속으로 내몰았는지도 알 턱이 없다. 그들은 가난 속에서 자랐고, 그런 환경에 만족한다. 남자들은 풍상에 단련되었다. 대부분 부모가 서울을 빠져나와 이곳에 은거할 때 따라온 사람들이다. 당시 그들의 부모는 세상을 버리고 이 미지의 .. 2025. 2. 23.
16. 독일 파사우 마리아 힐프 수도원 순례 성당 신성 로마 제국 ‘도움의 성모’ 기원 파사우 마리아 힐프 성당 오버하우스 요새에서 바라본 파사우 구도심과 마리아 힐프 수도원. 니더른부르크 수도원(가운데)·성 미카엘 성당(우측)도 보인다. 대성당은 사진 밖 우측에 있다 세 강이 합류하는 ‘물의 도시’ 파사우 도나우·인·일츠. 세 강이 합류하는 독일 파사우는 ‘물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독특한 풍광을 자랑합니다. 타키투스의 「동시대사」를 보면 로마군은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를 가로지르는 인강 유역부터 점령해 나갑니다. 인강이 철의 산지 노리쿰을 관류하는 도나우강의 지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강이 도나우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파사우는 로마군의 요충지였습니다. 당시 세워진 ‘바타비아’ 국경 요새가 오늘날 파사우의 시초지요. ‘오버하우스 요새’ 전망대에 오르면 .. 2025. 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