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어나 독서와 복음 묵상을 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이런 질문이 마음에서부터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내 위에 내려오시고 내가 성령에 사로잡히는 것이 꼭 좋을까?
이런 생각이 올라온 것은 아마 성령이 주님 위에 내리심을 얘기하는
어제 복음에 이어 또 성령 얘기가 오늘 말씀들을 도배하기 때문일 겁니다.
어쨌거나 이런 의문이 든 것에 제가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은
저는 지금껏 성령이 제게 오시기를 기도해왔기 때문입니다.
'오소서 성령님, 제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소서!' 이런 식으로
반복기도를 자주 바치곤 했던 저인데 어찌?!
어쩌면 정말 그것이 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악마가 은밀하게 유혹하는 소리일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전에는 사랑의 불이 제 안에서 타오르길 진정 원했지만
지금은 그 불이 타오르는 것을 제가 겁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냐면 사랑의 불은 고통이 그 땔감이기 때문이지요.
소시민적인 안주가 문제의 원인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런 저에게 그러니까 악마의 유혹을 은밀히 받는 저이건
아니면 편암함에 안주하려는 저이건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저에게
쳐들어오실 터인데 그것은 제가 오늘 복음에 나오는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자와 같은 존재이기에 그 영을 제게서 추방해주시기 위해서일 겁니다.
더러운 마귀의 영은 현세를 너무도 사랑하고,
자기의 영역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안주하기 때문에
주님을 따라 하느님께 가는 것마저 거부하는 존재이지요.
그러니까 그가 더러운 영인 이유는 현세와 자기 영역을 더럽게 집착하여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이 세상을 여기저기 떠돌고,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 집적거리며 떠돌기 때문입니다.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라는 말이 우리말에 있는데 집착 때문에 죽어서
저승도 못가고 이승에 남지도 못하고 구천을 헤매는 귀신을 말하지요.
더러운 마귀의 영도 이와 비슷하지만 그러나 구천이 아니라
아직 이승에 있는, 그것도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는 존재지요.
그래서 주님께서 회당에 가셨을 때 더러운 마귀의 영은 예수님께서
아무 소리도 하지 않으셨는데 도둑이 제발 저리듯 스스로 찾아와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자기들을 멸망시키러 오신 거냐고
애걸 반 협박 반 하고 있습니다.
이런 더러운 마귀의 영에 들린 자와 같은 저에게도
바오로 사도는 그래서 오늘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더러운 영의 더럽고도 교묘한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정신을 차리도록
오늘 바오로 사도는 제가 어떤 영을 받았는지 상기시키시는 것이라고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새벽녘 선방의 죽비소리처럼 제게 다가왔습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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