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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순결의 수호성인” 성녀 아녜스

by 세포네 2017.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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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 <천사가 준 망토를 덮고 있는 성녀 아녜스>, 캔버스에 유채, 1641년, 202×152cm, 드레스덴 국립미술관, 독일 


 성녀 아녜스(Agnes, 3세기 후반~4세기 후반)는 로마의 귀족 출신으로 아주 어린 나이에 순결한 생활을 희망하며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하기로 결심한다. 뛰어난 미모를 지닌 성녀에게 많은 젊은이가 관심을 보이며 청혼하나, 그녀는 모두 거절했다.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 때, 성녀 아녜스는 우상의 신들 앞에서 제사 지낼 것을 강요받았지만 거부했다.
그러자 집정관은 성녀에게 베스타 신전의 정녀(貞女)가 되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기록에 의하면, 성녀 아녜스는 “성호를 긋는 것 외에 절대로 그녀의 손을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고 했다. 화가 난 집정관은 성녀를 발가벗겨 매음굴로 보냈다. 그러나 성녀의 긴 머리가 빨리 자라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그녀의 머리카락이 온몸을 감싸며 보호했다고 한다. 성녀가 매음굴에 도착하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빛나는 하얀 천으로 그녀의 몸을 감싸준다.

 스페인 바로크 화가 리베라(Jusepe de Ribera, 1591~1652)는 명암대조와 자연주의적 치밀한 묘사로 성녀 아녜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스페인의 발렌시아 출신이지만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리베라는 자연스럽게 로마미술을 직접 접할 기회를 가지며, 카라바조의 명암대조와 사실주의적 묘사에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회화적 요소는 리베라가 그린 성인·성녀가 참회하거나 박해받는 모습, 고통받는 그리스도의 모습 등 정신적·육체적 고통과 묵상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그림의 왼쪽 위에 날개 달린 천사가 흰 천을 내려주어 성녀는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다. 두 손을 합장하고 무릎을 꿇은 성녀의 뒤 배경은 단조로우나, 성녀와 명암대조를 이루는 환한 금빛으로 성스러운 하늘의 은총이 가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빛과 어둠의 대조는 하늘을 향한 성녀의 관조적 시선과 함께 이 공간을 매음굴이 아닌 기도 장소로 만들고 있다. 성녀는 “그리스도는 나의 배우자”라고 대답하며, 그녀 가까이 접근하는 남자들에게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성녀 아녜스는 304년경에 13살 나이로 참수형을 선고받고 순교한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성녀는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이들보다도 더 기쁘게 사형 집행장으로 갔다.”고 전한다.

 그리스 어원을 지닌 아녜스의 뜻은 ‘순수한, 순결한’으로, 실제로 성녀는 정결한 몸을 하느님께 봉헌한 것이다. 이러한 성녀의 정결과 봉헌의 의미는 많은 화가가 성녀 아녜스를 백합꽃과 어린 양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그리곤 한다. 아녜스(Agnes)란 이름이 ‘어린 양’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뉴스(Agnus)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양은 젊음과 순수함,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희생을 상징한다.

“당신들은 칼로 나의 몸을 피로 물들게 할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께 바친 나를 결코 더럽게 할 수는 없다.”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동정에 관하여』 중




윤인복 소화데레사 교수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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