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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by 세포네 2016. 7. 10.


야코포 바사노, <착한 사마리아인>, 1562-63, 캔버스 위에 유채, 내셔널 갤러리, 런던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는 것은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일 것이다. 화가들에게도 가장 널리 알려지고 자주 언급된 비유 중 하나로, 화가들은 이야기의 전개를 두 장면으로 표현하곤 했다. 하나는 사마리아인이 한 여행자를 도와주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여행자를 여인숙에 데려와서 여인숙 주인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장면이다.

 야코포 바사노(Jacopo Bassano, 1517경~1592)는 광활하게 펼쳐진 야외 풍경을 배경으로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고 있는 사마리아인을 그렸다. 한 유다인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던 길에서 강도의 습격을 당해 초주검이 된다. 강도들은 그가 가진 돈뿐만 아니라 옷도 벗겨갔다. 그리고 쫓아오지 못하도록 강도들은 그를 흠씬 때렸고, 길에 피를 흘리며 거의 죽은 상태로 버리고 갔다. 길을 가던 사마리아인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당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경멸의 대상으로 생각했으며, 서로 적대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유다인들의 멸시를 받는 집단에 속한 사마리아인일지라도 어떻게 상처를 입고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보고 모른 척한단 말인가? 사마리아인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의 상처를 싸주고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간다. 왼쪽의 사마리아인은 알몸인 사람을 힘겹게 부축하고 있다. 알몸의 사람은 강도를 만나 모두 약탈당하고 옷도 빼앗겼음을 알 수 있다. 혼자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쳐 누군가의 손길이 없었다면 그의 생명은 보장할 수조차 없을 지경의 모습이다. 사마리아 사람은 평소에 자기 동족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유다인에게 따뜻한 손길을 베풀고 있다.

 그림에서조차 서로 다른 종에 속하는 짐승인 개와 나귀를 통해 서로를 배척하는 유다인과 사마리아인 집단을 빗대어서 그렸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이미 다친 사람의 머리와 오른쪽 발에 천을 둘러 급하게 치료를 끝낸 상태이다.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기름병과 포도주를 꺼내어 상처 부위를 치료했다. 이미 사용한 기름병은 바닥에 놓여 있고, 오른쪽 두 마리 개는 기름병에 냄새를 맡은 것이지, 아니면 떨어진 피 때문인지 바닥을 핥고 있다. 포도주와 기름은 상처를 소독하고, 아픔을 없애주며 상처를 아물게 해 주어 당시 치료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마리아 사람은 다친 사람의 상처의 고통을 없애주고 생명을 건져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마리아 사람은 다친 사람을 돌보면서 자신도 강도를 만날 수도 있고, 지역적인 적대 감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강도로 오인될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이렇게 위험을 무릅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림 왼쪽 뒤, 상처 입고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고 걸어가는 두 사람이 멀리 보인다. 한 사람은 손에 두루마리 성경까지 들고 있다. 이 둘은 사제와 레위인으로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초주검 상태에 의식을 잃은 사람을 보고도 피해서 지나가 버린 것이다. 아마도 사제와 레위인은 죽은 듯 보이는 사람을 보면서 시체에 접촉하는 것은 부정하다는 규율을 따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사람의 생명이 율법 규율보다 앞선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았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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