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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어리석은 부자

by 세포네 2016. 8. 7.



루도비코 포초세라토, <재산의 헛됨>, 16세기,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한 부자가 농사를 지었는데 풍년이 들어 많이 추수할 수 있었다. 그는 밭의 수확이 넘치도록 풍부해지자 곡식을 쌓아 둘 곳을 걱정했다. 새로 거두어들인 재물을 잃어버릴까 봐 노심초사할 뿐, 자기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주위의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는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기회라는 것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는 단지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고민했다. ­부자는 어마어마한 수확을 새로운 곳간을 만들어 보관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한다.

 르네상스 화가 루도비코 포초세라토(Ludovico Pozzoserrato, 1550경­1605)는 플랑드르 출신이지만 베네치아에서 활동하면서 그곳 전원의 빌라, 정원, 풍요로운 연회 등의 장면을 많이 그렸다. 풍작을 거두고 나서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 농부의 비유를 그린 <재산의 헛됨>에서도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펼쳐진 연회를 배경으로 한다.

 멀리 두 마리의 소가 끄는 마차는 오른쪽에 새로 짓고 있는 곳간을 향하고 있다. 마차에는 수확한 곡식 꾸러미가 가득하다. 오른쪽의 세 사람은 곳간을 확장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림의 중앙에 앉은 사람은 고민 고민 끝에 저장할 공간을 늘려 땅에서 많이 소출한 차고 넘치는 자신의 곡식과 물건을 보관할 계획이다. 부유한 사람은 풍성한 추수와 그것을 쌓아 놓는 것만이 행복하게 되는 데 필요한 전부라 여긴다.

 식탁 앞에 고급스럽게 차려입은 남자는 혼자 앉아 있다. 화가는 남자의 삶을 보여주는 듯 풍성한 과일과 음식으로 채워진 식탁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풍요로움을 함께 나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혼자이다. 호화스럽게 차려진 식탁 앞에서 즐거움이 가득해도 모자랄 지경인데, 남자의 표정은 고독함이 묻어있다. 왼쪽에 우아한 자태의 여자가 류트를 연주하고 있으나, 이 남자와 풍요로움을 함께 나누는 사람은 아니다. 여인의 등장은 단지 이 부유한 남자의 화려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부유한 남자는 모든 곡식과 재물을 쌓아둘 새 곳간도 만들었고 풍요로운 식탁에서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고 있으니, 그의 계획이 모두 이루어졌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황금빛으로 둘러싸인 천사가 두 날개를 활짝 편 채 부유한 남자에게 나타났다. 남자의 어리석음을 경고하기 위한 하느님의 말씀을 보여주듯 천사가 등장한다. 천사의 오른손은 분명히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이 남자에게 그의 재물을 하늘에 쌓아야 했었다고 권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물을 쌓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던 그는 이미 하늘의 곳간은 잊고 있었다. 헌 곳간을 허물고 새로 지은 곳간이 더 안전한 곳인 줄 믿고 자기 곡식과 재물이 여러 해 동안 비축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는 천사를 통해 한순간에 그의 모든 재산이 사라져버릴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세상의 풍요한 재물을 얻는 데 열중한 나머지 삶의 중요한 목적을 잊어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사람은 영화 속에 오래가지 못하여 도살되는 짐승과 같다.”(시편 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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