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와 브뢰겔,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그리스도>, 1619-20, 패널 위에 유채, 64×61.9cm,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더블린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베다니아라는 마을을 지날 때 라자로와 그의 누이들인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셨다. 마르타는 기꺼이 자신의 집으로 그리스도를 모셨다. 벨기에의 도시인 안트베르펜 출신의 두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와 얀 브뢰겔(Jan Brueghel II, 1601-1678)은 멀리 푸른 풍경이 펼쳐진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배경으로 한 풍속화처럼 루카 복음서의 내용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예수님을 비롯해 한 무리의 제자들이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들이닥친다. 마르타는 무려 열세 명의 장정에게 음식을 잘 대접하기 위해 부엌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했다. 마르타는 손님을 대접할 음식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그녀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만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계실 때, 마리아도 예수님의 발치에 편하게 앉아 말씀을 듣고 있다.
그림 속 오른쪽에서 마리아는 가운데 의자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보다 낮은 곳에 앉아 겸손하고 경건하게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손에는 말씀을 담은 책이 들려 있고, 등 뒤의 탁자 위에 놓인 과일 바구니와 그녀의 발치에 놓인 바구니 안에는 포도가 가득하다. 성경에 포도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온다.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포도는 평화와 축복을, 그리고 알알이 맺힌 열매와 뻗어 나가는 넝쿨 등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그러나 포도의 가장 큰 상징은 우리 죄를 속죄하시려고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를 포도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미사 때 사용하는 미사주는 포도주이기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포도는 특별한 의미의 과일임이 틀림없다.
왼쪽의 마르타는 선 채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앞치마를 두르고 옷소매를 걷어 올린 그녀의 모습은 부엌에서 정신없이 일하다가 나온 모습이다. 그녀는 투덜대며 예수님께 일하지 않는 동생을 타일러 달라고 부탁한다. 마르타는 동생 마리아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유다 전통에 따르면 여자들은 라삐가 가르치는 자리에 있을 수 없으며, 마리아의 의무는 부엌에서 마르타의 일을 돕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마르타에게 다소 섭섭하게 느낄 수 있는 말씀을 하신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르타가 조급해하고 염려하는 마음과는 달리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것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반면, 마르타에게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우선 배려하며 일상적인 일을 잘 해내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을 것이다. 그녀 곁에 민첩함을 상징하는 개가 있는 것처럼 그녀는 매우 활동적이고 공적 활동에 익숙한 여자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르타가 하느님 나라를 잊어버릴 만큼 많은 바쁜 일에 깊이 빠지지 않길 바라시는 마음이셨을 것이다. ‘기도하고 일하라. Ora et labora’(성 베네딕토)
“사람의 마음속에 많은 계획이 들어 있어도 이루어지는 것은 주님의 뜻뿐이다.”(잠언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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