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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생명의 빵

by 세포네 2015. 9. 20.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면서 자신의 삶을 빵과 포도주의 표징으로 나타내셨다. 통상적인 만찬 관습에 따라서 예수님은 빵을 쪼개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마태 26, 26)라는 말씀으로 쪼개진 빵에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다. 참으로 놀라운 순간이다. 빵의 형상을 한 예수님의 몸을 식탁에 둘러앉은 제자들은 받아먹을 준비를 하고 있다.

유대인의 전통적인 식사예절을 나타내는 말굽 형태(반원형)의 식탁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둘러앉아 있다. 왼편에 자리한 예수님은 제자들보다 조금 크게 그려져 있고, 예수님 바로 옆에는 예수님을 가장 따르고 사랑한 제자인 어린 요한과 머리를 산발한 안드레아가 스승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반면, 베드로는 식탁 오른쪽 끝에 자리를 잡고 있다.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자세가 아니라,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맨발에 한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있다. 베드로의 이러한 동작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세족례가 끝나자마자 만찬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유다는 오른팔을 길게 뻗어 전형적인 유대인들의 파스카 만찬의 차림새를 갖춘 식탁에, 커다란 그릇에 담긴 구운 양고기를 잡으려 한다. 양은 구약 희생제사로 중요했다. 일 년 된 두 마리의 숫양을 날마다 아침과 저녁에 한 마리씩 하느님 제단 위에 바쳐야 했다.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바쳐야 하는 일일 번제물이다.” (출애 29, 42) 이러한 희생제물로서의 양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진다. 예수님은 세상에 생명을 위해 희생하신다. 요한 세례자는 이러한 예수님을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요한 1, 29)라며 외쳤다. 

식탁 위에는 열두 개의 둥근 작은 빵이 각 제자 앞에 놓여 있다. 예수님 바로 앞에는 몇 개의 조각난 빵도 있다. 그 위에 예수님께서는 손을 들어 축복의 동작을 취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쪼갠 빵 조각인 듯싶다. 이렇게 최후의 만찬에서 빵을 쪼갠다는 것은 이 식사 후에 곧 있을 예수님의 죽음을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지금도 동방교회에서는 예수님 시대와 마찬가지로 갓 구운 빵을 칼로 자르지 않고 뜯거나 쪼개어서 조각을 낸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마태 26, 21)는 것을 알면서도, 제자들을 자신의 죽음에 연결시키는 식사를 통해, “마지막까지 당신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요한 13, 1)” 모습을 남기신다. 잘게 쪼갠 빵은 예수님 손으로 직접 각 제자에게 나누어 주신다. 예수님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시어, 자신의 몸을 쪼개시어 식탁(성찬례)에 무한히 나누어지도록 내어놓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실, 우리에게 나누어 주실, 무한한 사랑과 생명이 담긴 빵을 쪼갠 것이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님이신 살아 있는 이 빵을 받아먹는다. 예수님의 영양분을 섭취한다는 것은 그분처럼 생각하고, 그분처럼 사랑하고, 그분처럼 산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갈라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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