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지역은 물이 귀하고 석회석이 많았기 때문에 포도주는 필수적인 음료이며, 그것은 풍요와 축복의 상징이기도 했다.
성경에서 포도주에 관한 이야기는 구약에서 하느님의 심판으로 표현되기도 했으며, 예수님께서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시어 포도주가 메시아의 도래를 나타내는 표징이 되기도 했다. 혼인 잔치에서 새 포도주는 여섯 개의 돌 항아리에 담겼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마태 26, 27-28)라고 하시며 포도주를 내어 주셨다. 최후의 만찬 때의 포도주 한 잔이 더해지면서 이렇게 완전을 뜻하는 숫자 일곱이 완성된다. 포도주는 우리 죄에 대해 속죄하시려고 예수님이 흘리신 계약의 피, ‘생명’인 것이다.
포도주, 생명의 피가 예수님의 몸에서 흐르고 있다. 가로와 세로가 20cm를 넘지 않는 작품에서 예수님은 인류에게 흐르는 사랑의 표징인 피를 성 프란치스코에게 내어주고 계신다. 화가 특유의 섬세한 세밀화 작업을 통해 그리스도와 성 프란치스코의 만남을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몸을 지탱하고 있지만 힘겨운 모습이다. 십자가의 무게가 버거운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의 수난의 시간을 말해주는 십자가 위에 달린 ‘유다인들의 임금(INRI)’이라는 죄명 패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실 당시 사용되었던 도구, 세 개의 못과 채찍, 머리에 씌워졌던 가시관 때문인지? 더욱이 실내 기둥 장식처럼 보이는 왼쪽 기둥은 예수님께서 기둥에 묶여 채찍질 당하신 돌기둥을 상징하는 것으로 수난의 시간을 생생하게 상기시킨다. 기둥에는 예수님께서 묶이셨던 긴 줄과 수난의 도구들이 세워져 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기 전 갈대에 신 포도주를 적셔 마시게 한 해면과 십자가에서 로마군이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찌른 창이다. 이 창으로 인해 예수님 옆구리의 상처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으나, 이 피로 말미암아 세상 모든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하신다. 결국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의 수난 도구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사랑(희생)의 상징인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에게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이다.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요한 7, 38)
예수님은 약간 고개를 돌려 성 프란치스코 쪽으로 시선을 향해, 오른손으로 피가 흘러내리는 가슴의 상처를 직접 펼쳐 보이고 계신다. 성인은 무릎을 꿇고 잔을 들어 예수님의 피, 계약의 피를 받고 있다.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 (1베드 1, 19)를 취함으로써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와 닮은 모습의 오상의 흔적이 성인의 손과 발에 뚜렷하게 보인다. 이렇게 성인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다.” (에페 2, 13) 이 피를 마시는 성인은 예수님 안에서 보호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예수님과 함께 벽부터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 아칸서스 잎 장식이 수놓아진 천에 발을 딛고 있다. 가시에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akanthos”(아칸토스)에서 유래된 아칸서스는 성스런 공간 입구에서 보호의 의미를 가지며, 주로 고대의 석관에서는 영원성의 상징을 가진다.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2요한 2, 25)
[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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