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내에서 프랑스 특유의 달팽이(6마리) 요리와 함께 점심을 먹고 드디어 파라 시내 관광에 들어간다.
파리에 도착하면 무엇보다 가슴이 설레기 마련이다. 패션의 도시, 예술의 도시, 낭만의 도시, 명품의 도시. 등등...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할것 같다.
↑ 우선 파리 시내의 명소를 살펴보자
에펠탑이 한눈에 잘 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간다.
↑ 가는 길에 기아자동차 매장이 보인다
저 맨 끝 건물 뒤로 트로카데로 광장이 있는 것 같은데 돌아가여 한는가 보다.
콩코드 광장 옆을 지나간다
↑ 광장에 우뚝선 오벨리스크
높이는 23m정도이고 이집트 람세스2세의 사원(룩소르신전)에 있던것을 1830년 모하메드 알리가 프랑스 왕 루이 필립에게 기증했다고한다.
상형문자로 가득 채워넣은 글자는 파라오를 숭배하는 글로 전각되었다고한다. 이 오벨리스크는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고도 불리운다.
세느강을 건느고 . . .
↑ 드디어 트로카데로 광장 앞으로 . . .
↑ 에펠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 황금색 돔의 앵발리드(Invalides)가 보인다
샤이오 궁 / 샤요궁 [─宮, Palais de Chaillot]
프랑스 파리에 있는 박물관.
센강(江) 북쪽 강변에 에펠탑을 바라보며 서 있으며, 1937년 파리 박람회 때의 전시관이었다. 1878년의 박람회를 위하여 다뷔와 부르데가 세운
도로카데로궁(宮) 부지에 카를뤼 부알로 아제마가 설계한 것인데, 장대(長大)한 동서(東西) 날개집[翼舍:wing house] 내부에 원래의 건물이 있다.
조상(彫像)이 늘어서 있는 중앙광장 아래에는 약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샤요 극장이 있고, 1948년 제3회 국제연합총회 회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동쪽 날개는 프랑스 기념박물관이며, 건축조각 ·벽화 등 뛰어난 수집품과 모형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1879년에 비올레르뒤크가 창립한
건축조각 박물관을 토대로 하고 있다. 서쪽 날개는 인류박물관으로, 세계 각국의 인류학 ·민속학 관계의 수집품이 진열되어 있다.
또한 서쪽 날개의 일부에는 해양박물관도 있는데, 프랑스 해군 및 상선의 발전사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파리 국립극장과 해양 박물관, 인류 박물관, 문화재 박물관, 영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에펠탑을 보기에 가장 좋은 위치로 알려져 있다
개선문 (Arc de Triomphe)
1805년 아우스틸리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나폴레옹이 그의 부하들에게 개선문을 통해 집에 돌아갈 것을 약속했고
그로인해 가장 유명한 아치형의 문으로 탄생을 위해 그 다음해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권력이 실추되자
1836년까지 보류되었고 다시 공사가 재개 되었는데 이때 개선문의 건축가 '장 샬그랭(jean Chalgrin)의 계획도 파기가 되었었다고 한다.
개선문은 에펠탑과 더불어 파리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곳과 연결되어지는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보고
또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부하들에게 전쟁 후 개선문을 통화해서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결국 나폴레옹 자신은 죽은 후 이곳을 지나 그가 있는 앵발리드에 묻혔다.
↑ 개선문에는 플랑부이양 양식의 부조와 방패무늬 조각들, 그리고 개선문 아치 안쪽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개선문 전면에 있는 부조는 나폴레옹의 승리를 기념해 만든 부조로 조각가 '코로'가 제작했다.
↑ Champs E·ly·sees
샹젤리제 거리는 개선문에서부터 콩코르드 광장까지 1.88㎞로 뻗어나 있는데 이곳은 샹젤리제 원형 광장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뉜다.
콩코르드 광장과 그 너머 튀일리 공원을 향한 아래쪽 부분은 공원이며, 박물관·극장·식당 등이 있다. 개선문을 향한 위쪽 부분은
식당, 영화관, 명품점, 사무실, 상점가 등이 주로 자리잡고 있는데 저녁 무렵이어서 그런지 안쪽의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어
이곳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다. 17세기에 처음 설계되었을 때는 당시 파리 외곽에 속하던 넓은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센 강을 따라 튀일리 궁까지 이어지는 도로인 '쿠르 드 라 렌을 포함했다. 17세기말 앙드레 르 노트르가 넓고 그늘이 많은 대로를 조경했고
오늘날 개선문이 서 있는 언덕 마루까지 이 길을 연장했다. 18세기에는 그 전체가 샹젤리제라고 불리게 되었다. 개선문이 1836년 준공되었고,
1860년대에 이르러 조르주 외젠 오스만 남작이 파리의 대로들을 완전히 재설계하면서 샹젤리제 대로는 궁·호텔·식당들이 있는 대로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제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향한다
↑ 가는 길에 파리의 8학군이라는 곳을 지난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면서 생겨난 명소라나 . . .???
↑ 파라에서는 어딜가나 세느강과 연결 되는가 보다
↑ 드디어 베르사이유 궁정 앞에 도착 했다.
베르사이유궁전
197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한 베르사이유궁전.
베르사이유궁전은 유럽 최고의 왕권을 자랑하던 부르봉 왕조가 107년에 걸쳐 살았던 절대군주 체제의 대표적인 사적지다.
원래는 루이 13세가 사냥을 하며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지은 작은 별장이었으나 루이14세의 막강한 권력과 50년에 걸친 공사로
아루어진 화려한 궁전이다. 이후 베르사유 궁전으로 말미암아 프랑스 대혁명을 초래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부르봉왕조는 영원히 몰락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혁명이 일어난때는 루이16세때이다.
↑ 파리 서남쪽 23km에 있는 절대주의 왕권의 영화를 상징하는 대궁전이다. '짐은 국가다' 라고 했던 루이 14세가
20년에 걸쳐 세운 궁으로 이후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앙트와네트가 호사를 누리다가 프랑스 대혁명으로 비운을 맞은 곳이기도 하다.
↑ 가운데 쯤 있는 건물이 왕실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던 성당이다.
↑ 정원은 최고의 조경사 르 노트르가 설계했다. 정원의 모습은 기하학적인 모양의 꽃밭과 아폴론의 분수도 보인다.
거울의 방은 길이 73m, 너비 10.5m, 높이 13m인 회랑으로서 거울이 17개의 아케이드를 천장 부근까지 가득 메우고 있고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뒤덮여 있다.
궁정의식을 치르거나 외국특사를 맞을 때 사용되었으며, 화려한 내부장식을 한 '전쟁의 방'과 '평화의 방'으로 이어진다.
'나폴레옹 대관식'
베르사이유의 그림 중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에 서니 자끄 루이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대관식' 그림이 있다.
이그림의 가로 폭은 10m나 되는데 정식 명칭은 '1804년 12월 2일 파리 노트르담 사원에서의 황제 나폴레옹 1세와 황후 조세핀의 대관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림의 특징은 좌우는 어두운 색감을 표현하고 자폴레옹과 조세핀이 있는 부분은 밝게 처리를 했으며 등장 인물들을
화면 중앙 아래에 배치하고 윗부분을 시원한 공간으로 그림을 완성했다. 그림에서는 나폴레옹이 월계관을 쓰고 있다.
왕관대신 월계관을 쓴 이유에 대해서는 자신을 로마의 황제와 동일 시 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의 작가인 다비드는 나폴레옹 궁중 수석화가로서 역사적 화가로 남지만 나폴레옹의 비운에 같이 브뤼셀로 망명해 죽음을 맞는다.
이 작품은 루브르와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똑같이 볼 수 있는데 차이점은 왼쪽 나란히 선 조세핀의 딸 중 한사람 옷 색깔이 분홍색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자끄 루이 다비드가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랑한 여인을 나타내기 위한 자기만의 방법이었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아내 조세핀을 대관식의 여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의상비로 책정해 온갖 사치를 부렸다. 조세핀과 황제의 대관식 의상 비용으로
총 1,123,000프랑을 사용했고, 황후의 시녀 의상비로 10,000프랑을 사용하여 아내에게 자신의 엄청난 성공과 절대적인 능력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또 나폴레옹은 그림을 통해 오랜 세월 조세핀을 괴롭힌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주고자 대관식 행사 장면에서 실제로 참석하지 않은 자신의 가족
모두를 그려 넣으라고 하였다. 나폴레옹은 조세핀과의 결혼으로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졌다. 나폴레옹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조세핀을 무척 싫어했다.
나폴레옹의 어머니는 자식이 둘이나 딸리고 행실이 나쁜 과부 조세핀이 자랑스런 아들을 빼앗아간 요부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들부부가 사이가 좋지 않아 어머니 레디치아는 자식의 결혼식과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랑자빠르뜨망(GRANDS APPARTEMENTS)
이탈리안 바로크 양식으로 금 장식을 한 구리, 청동, 대리석 등 고급스런 재료들을 주로 사용한 루이 14세 스타일의 화려한 건축물로서,
일주일에 세 번씩 사치스런 파티가 열렸던 장소이다. 그랑 다빠르뜨망은 뷔페 연회가 열렸던 Salon de l'Abondance와 루이 14세 때에 당구장으로 쓰인
Salon de Diane, 원래는 대기실이었으나 때때로 리셉션 장소로 쓰인 Salon de Mars, 각국의 외교 사절들을 접견하던 Salon d'Spollon,
화려한 천장화가 유명한 Salon de Venus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의 조그만 시골이었던 베르사이유가 궁전이 들어서면서 관할권을 갖게된 이곳에 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에 호화 스런 궁전을 짓고
이를 바탕으로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베르사이유 궁전이 완성되어 루이14세가 이 궁전으로 옮겨 살게된 것은
1682년의 일이다. 루이 14세는 각 지방의 영주들을 불러 이 궁전 안에서 살게 하였으므로 당시 이 궁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거하였는데
게란트(Roger-Henrl Guerrand)가 쓴 <화장실문화사(Les Lieux. Historie des Commdites)>를 보면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궁전을 출입했던 수많은 귀족들이 그들의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상상하면 그저 놀라움 자체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건물의 구석 벽이나 바닥 또는 정원의 풀숲이나 나무 밑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는 '향수의 나라'가 되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유럽 전역에서는 지금도 하장실 사용료를 내야하는데 이것 또한 로마시대에 여기저기 오물과 쓰레기가 지천인 점을
보완하기 위해 화장실 관리비 차원에서 이루어지던것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관행이 되어버린것이다.
베르사이유 궁전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벌써 어두움이 깔려온다.
이제 다시 시내로 들어가 저녁을 먹고 샹젤리제 거리 밤풍경, 세느강과 에펠탑 야간투어를 해야 한다. 옵션으로 1인당 80유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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