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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여행이야기

유럽여행 6일째날(1) - 베네치아

by 세포네 2013. 12. 22.

오늘 아침은 조금 여유롭다.... 버스를 타고 베네치아 항구로 향한다...

 

 

베네치아 항구 앞에 열린 노점상들 같다 .. 어딜가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엔 노점상들이 관광객을 맞는다. 

 

베네치아 항구

 

 

 

 

 베네치아 항구에 아침 해가 떠오른다.... 여기서 배를 타고 이제 섬 안으로 들어간다.

 

베네치아는 400여개의 다리로 연결된 118개의 섬 177개의 운하로 이루어진 물의 도시답게 아름다운 풍광이 마음을 설레게 할 것이라며

가이드의 설명이 시작된다. 그리고 저 멀리 오래되 보이는 전통적인 기차가 한층 베테치아의 경치를 더해준다.
베네치아는 여행객들에게 있어 뼈속까지 가보고 싶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도시다. 이탈리아에 오면 그 누구도 감탄에 인색한 사람은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무역으로 말미암아 거대한 부를 축척했던 베네치아에 대해 부러움을 가지게된다.

베네치아는 13세기중반에 내륙의 페라라(Ferrara)를 점령하여 포(Po)강 유역의 상권을 장악한데 이어서, 14세기말까지 지속된
제노바와의 전쟁을 통해 대내외적인 지배체제의 반석을 다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등의
수많은 건축물을 완성함으로써 15세기에는 이탈리아 반도의 명실상부한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베네치아의 기원은 로마제국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면서 서기 586년 북방민족인 롱고바르디족의 위협은 베네토(Veneto) 지역의 주민들에게

죽음보다는 자연환경과의 험난한 투쟁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베네치아는 토사들이 내륙의 여러 지류들에서 아드리아해로 흘러들어

형성된 늪지대(Laguna)로 인간이 살기에는 매우 부적합했던 불모지였다. 이곳으로 피신한 베네토의 사람들은 자연과 투쟁하며

돌과 흙으로 지반을  다저 가며 이곳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어 갔다. 이후 베네치아는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거쳐 697년에는 사실상

공화국의 선포를 의미하는 도제(Doge)를 선출(697)하였는데 이러한 체제는 1797년 나폴레옹의 지배이전까지 1100년간 지속되었다.

 

베네치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꿈에 그리던 '물의도시' 베네치아로 들어간다.

 

 승선장 바포레또도에 내려 이제 본격적으로 베네치아 관광이 시작된다.

베네치아의 상인으로 동방여행을 떠나 중국 각지를 여행하고 동방견문록을 써서 우리에게 알려진 마르코폴로도 있지만 '사계'로 유명한 작곡가 비발디도 있답니다.

비발디의 생가 왼쪽에는 비발디가 어렸을 때 세례를 받았던 '산 지오반니 인 브라고라 성당'

베네치아 태생인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연주자, 작곡가인 비발디는 베네치아 성 마르코 대성당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로에게

바이올린의 초보 교육을 받았고, 레그렌찌에게 작곡을 배웠다고 합니다. 비발디는 10살 때 아버지와 듀엣 바이올린 연주팀으로 공연하면서 유명해져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유럽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는데 가난했던 그는 수준놓은 음악 교육을 받기 위해 일부러 신부가 되었지만 1년만에

천식으로 그만 두게 되었고, 그 후에 베네치아의 구빈원에 버려졌던 어린 고아 수녀들에게 15년간 바이올린을 가르쳤어요.

비발디는 죽기 직전 비엔나로 간 것을 제외하고는 평생 이 동네 근처에 살았다고 해요.

 

 

 

 

 

 

 

 

 

 

 

 

탄식의 다리 Ponte dei Sospiri
운하를 사이에 두고 두칼레 궁전과 감옥 Prigioni을 잇는 다리. 대평의원회에서 재판을 받아 형을 선고받은 죄인들이 감옥으로 가는 이 다리를 건너면서
다리 창문으로 바깥 세계를 바라보며 탄식을 한데서 다리 이름이 유래됐다. 그러나 그곳을 유유히 걸어나온 사나이

지아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Giacomo Girolamo Casanova)의 이야기... 생의 전부를 사랑에 바쳤던 그가 사랑을 여자에게만 나누어주었던 건 아니다.
카사노바는 우리에게‘호색한’이라는 단어로 기억된다. 1725년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그는 귀족 여인들을 상대로 애정행각을 벌이면서

132명의 여인들과의 관계를 기록으로 남겼다. 각종 기록에 서도 카사노바를 키가 2m에 이르고 박식한 데다 예술적 재능까지 뛰어나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곤 했다고 묘사한다. 카사노바는 매력적인 남성이었을 뿐 아니라, 신사업에 서슴없이 뛰어들어 거액을 투자하는 벤처투자자이기도 했다.
그가 투자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 첫 사업은 복권사업이었다. 고향 베네치아를 떠나 파리 사교계를 전전하던 카사노바는,
1757년 재정난을 겪고 있는 파리시의 어려움을 간파하고 당시 프랑스 왕이었던 루이15세에게 복권제도 도입을 건의했다.
제안이 받아들여지면서 복권사업 책임자로 임명된 카사노바는, 첫 번째 사업으로 파리시에 60만 프랑의 이익을 남겨줬다.
카사노바는 이 감옥의 소장 부인을 유혹해 결국 이다리를 건너 세상으로 다시 나오는데 성공했고 이후 그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생을 마쳤다.

 

여기서도 또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한 방편으로 가이드는 유리공예를 하는 곳으로 안내한다

유리공예를 전문으로 하는 장인이 유리를 가지고 시범을 보이고있다. 뚝딱하면 작품이 나오는것을 보니 많은 시간동안 내공을 기른듯 보인다.

 

 

 

산 마르코 광장으로 들어선다

이곳은 싼 마르코 광장이다. 이곳에는 오래딘 카페가 많은데 아름다운 이탈리아 곡들을 연주하며 노천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많이 볼수 있다.

나폴레옹이 '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격찬을 했을만큼 아름다운 베네치아 - 원래 싼 마르코 광장은 채소밭이었던 곳을 아름다운 광장으로 만들었다.
카페중에 플로리안멜랑제 카페는 1720년에 개업을 한 이래로 많은 유명 인사들이 다녀갔다고한다. 그 중에 마이런, 괴테, 바그너 등이 이곳의 단골인사였다고.
높게 보이는 종루는 싼 조르조 마죠레 성당과 함께 손꼽히는 전망포인트다. 높이 100m나 되는데 원래는 10세기에 만들어져

1,000년의 세월을 견디었지만 1902년 무너져 다시 10년에 걸치 공사를 함으로 다시 개축되었다고한다. 예전에는 종루에 말이 올라갈 정도였는데

지금은 좁아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를 수 있다.

 

이곳이 '싼 마르코 성당'이다
12사도 가운데 한명인 싼 마르코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세운 성당이다. 그의 유해는 9세기의 베네치아 상인이 목숨을 걸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훔쳐왔는데 이집트인이 회교도라는 사실을 알고 돼지고기 밑에 유해를 숨겨 들어왔다고한다.
상당 건물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형태로 성당 입구 위에 있는 힘찬 4마리의 청동 말 조각은 기원전
2~4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십자군이 13세기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온 전리품이다.
그 후 나폴레옹이 가져 가기도 했지만 그가 하야한 후 되돌려 받은 역사도 있다.

 

 카사노바가 작업 하는데 주로 사용했던 카페오 유명인사들이 주로 이용한다 . . .

 산마르코 성당 내부

 

 

 

 

 고해소인듯 . . .

 

 

 

 

 

 

 

 

 

곤돌라를 멋진 여행 상품으로 우리는 이용하고 또 대표적인 베네치아의 상징으로 생각하는데 이 곤돌라는 베네치아를 침략한 외적이

섬의 처녀들을 모조리 납치하는 사건이 생긴후로 마을 청년들이 소리없이 움직이는 배를 만들어 처녀들을 구출하자고 한데서

이 배가 만들어졌다고 하는 유래가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인것 같다.

산타마리아델라살루테 [Santa Maria della Salute]
물의 도시인 베네치아의 풍경과 늘 함께 하는, 베네치아의 상징 중 하나인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는 우리가 진입한 반대편에서 대운하에 접근하면

운하의 초입을 당당하게 지키고 있는 웅장한 모습을 실감할 수 있다. 이 바로크 양식의 거대한 성당은 베네치아 건축의 권위를 입증하는

최고의 건축물로 꼽히고 있으며 100만개 이상의 나무 기둥이 육중한 건물을 떠받치고 있다. 6세기경 페스트가 유럽 일대를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후

베네치아의 인구도 1/3이 줄어들었고 당시 페스트로 부터의 보호를 빌며 기도하던 베네치아 시민들의 서원대로 페스트의 재앙이 지나간 이후인
7세기에 지어진 성당으로 살루테란 이태리어로 '건강'을 의미한다고. 발다사레 론게나라는 건축가에 의해 착공된 이 성당은 50년 이상이나 걸려 완공되어
그는 살아 생전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의 완성된 모습을 보지 못했다.

 

 

 

 

 

 

 

 

 

 

 곤도라 관광을 마치고 이번엔 운하를 감사하는 수상택시 투어로 바꾸어 관광을 한다.

 

 산 마르코 광장 북쪽에 있는 리알토 다리는 대운하에 걸친 다리를 대표하는 대리석 다리로 1588~1592년에 가설됐다.

폭 22m, 길이 48m로, 이 일대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주변에는 쇼핑가와 오래된 집들이 들어서 있으며,
다리 동쪽으로는 산 바르톨로  메오 광장이 있다. 이전에는 목조였으나 16세기 말에 현재의 석조로 바뀌었다.
이 부근은 하루종일 사람이 넘치는 곳으로 활기에 차있다. 다리에서 운하를 보아도 좋고. 양쪽 가게에서 쇼핑을 즐기는것도 재미있다.
베네치아 기분에 흠뻑 잠길수 있는 곳.

 

 

 

 

 

베네치아 관광을 모두 마치고 이제 점심먹으러 간다.

 

 

 

 식당 사장님이 이탈리아로 성악공부를 하러오신분인데 현재도 계속 공부중이라며 성악 3곡을 불러주셨다.

 

점심으로 마치고 이제 밀라노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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