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시차에 조금씩 적응해 가는 것 같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출발한다.
피렌체까지 버스로 3시간 정도 간다 한다. 아침 7시 출발...
그림이나 인터넷에서 많이 눈에 익었던 피렌체.. 그 중앙의 붉은 돔형의 성당 산타 마리아 성당.......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1번 고속도로를 달려가며 가이드는 두시간여동안 쉬지 않고 피렌체와 르네상스, 그리고 배놓을 수 없는 메디치 가문 이야기를 쏟아낸다.
피렌체를 설명하기 위해 메디치 가문과 복잡하게 얽혀져 있는 르네상스시대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며 . . .
메디치 가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약하면
메디치 가문은 1397~1743년 346년간 유럽최고의 귀족 가문이었다. 르네상스를 후원하고 우피치 미술관 소장품을 피렌체에 기증하여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게 하고 레오10세 및 클레멘트 등 교황2명을 배출하고 프랑스 왕비 2명을 배출한 가문이다.
단순하게 권력을 가진
귀족가문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여 오페라의 탄생과 서양식 식사 예절, 하이힐 패션 등이 나온 것은
모두 메디치가와 관계가 있다. 또한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갈릴레요 갈릴레이 등을 후원하고, 아메리카대륙의 유래가 된 '아메리고 베스푸치'도 후원하여
아메리카 대륙행을 도와주었다. 원래 Mugello 지방의 조그만 농장주 였던 메디치가문은 근처 마을 피렌체에서 은행업을 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교리상 은행업을 할 수없었기에 '장부'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신용'과 '재량'으로 이자를 주는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여기에 바로 메디치 성장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더우기 은행업과 함께 모직사업을 진행하면서 유럽각국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었기에 더욱 큰 성장이 이뤄진 것이다.
메디치가문의 이야기중에서 가장 극적이면서, 가장 많이 알려진 이야기는 교황 요한 23세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그 이야기를 다 설명할 수는 없고 암튼 피렌체와 메디치 가문이야기는 떼놓을 수 없는 이야기건 것만은 틀립없다고 생각된다.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덧 피렌체에 도착한다.. 참 대단하다 우리 가이드~~~이종경씨이라 했던가??
피렌체에 도착하자 피렌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미켈란젤로 언덕 으로 . . . 여기서 바라보는 피렌체의 모습이 장관이다 ~~~
아르노강 주위의 베키오다리, 두오모성당의 둥근돔, 베키오궁전 등 피렌체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피렌체
피렌체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지이며 피렌체 주의 주도로 플로렌스라고 부르기도한다.
로마에서 북서쪽으로 약 230㎞ 떨어져 있는 이 시는 공화국, 토스카나 공작령의 수도, 이탈리아의 수도(1865~71) 등
다양한 지위를 누리며 긴 역사를 이어왔다. BC 1세기경 로마의 군사 식민지에서 비롯된 곳으로 14~16세기에는 예술을 비롯하여
상업·금융·학문 등의 분야에서 높은 위치를 점했다. 이곳을 무대로 활발히 활동했던 천재들을 통해 이 시의 탁월함을 엿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브루넬레스키, 단테, 마키아벨리, 갈릴레오 및 메디치 가문을 들 수 있다.
아르노 강 양쪽 기슭에 세워져 있어 종종 범람을 겪는 이 시는 온대성 기후를 보이나 계절에 따라 몹시 덥거나 추운 현상이 잠깐씩 나타난다.
↑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보는 피렌체 전경 중앙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 아르노강을 끼고 있는 중세풍도시인데 멀리 베키오다리
↑ 중세시대의 성
이제 시내로 들어간다...
↑ 베키오다리
베키오다리가 있는 아르노강은 이탈리아 중부지방 아펜니산맥에서 발원하여 피렌체와 피사를 거쳐
지중해로 흘러들어가는 길이 240m의 강으로 수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지역 농업생산에 필요한 물을 공급해주는 역활을 하고 있고,
피렌체 도심을 흐르는 아르노강은 피렌체를 비롯 토스카나 지방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자원이다.
폰테 베키오('오래된 다리'라는 뜻)는 금·은 세공인, 보석상들이 모여 있는 상업 요지이다.
↑ 아침 일찍 떠나서 배가 고프다. 금강산도 식후 경
↑ 식당 내부
↑ 시뇨리아 광장으로 이동 하는 중에 . . .
↑ 요기 돌아서면 바로 시뇨리아 광장이다. 차가 앙증스럽디.
↑ 시뇨리아 광장으로 들어선다
↑ 피렌체의 정치 중심지였던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 )
중세 이래로 피렌체의 중심인 시뇨리아 광장은 오늘날까지도 피렌체 사람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을 모으는 정치적인 연설과 시위의 장소로 남아있다.
광장에는 복제품을 비롯한 많은 예술작품들이 즐비해 있다. 공화주의의 이상이 명백히 표현된 절대군주의 살해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복제본이고 원본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다.)에서 지암볼로냐(Giambologna)의 기수상의 듀크 코지모(Duke Cosimo) 1세의 초상화식 동상(1594년)과 사비니 여인의 강간까지, 이 곳에 있는 건축물에서 신화와 과거의 정치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광장 중앙에는 넵튠 분수가 있고 종교개혁을 주도하다 처형된 사보나롤라의 처형지라는 표식인 화강암도 보이며 저쪽으로는 베키오 궁전이 보인다. 최근 광장 밑에서의 발굴로 인해 중세의 건물뿐만 아니라 AD 1세기의 로마 건축양식도 있음이 알려졌다.
↑ 베키오궁전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Toscana州)의 주도로 메디치가의 지배하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메디치가는 은행가였으며 피렌체의 영어 이름은 ‘플로렌스(Florence)’이다.
이 건물은 현재 베키오라고 불리우고 있지만 실상은 784년전인 1229년 토스카나 공화국의 행정청사로 쓰이던 말하자면
피렌체의 중심부 역활이었다. 그때는 시뇨리아궁전으로 이름이 붙혀져 있었고 후에 공작궁전으로 불리는 역사를 가지고있다.
베키오궁전이란 이름은 '오래된 궁전'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메디치가의 코시모1세가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공작궁전'으로
그리고 그가 이곳에서 25년정도를 산 1565년 이후에 거처를 피티궁전으로 옮김에 따라 지금의 베키오궁전이란 이름이 굳혀지게되었다.
현재 피렌체 시청으로 계속 이용하고 있는 베키오궁전은 피렌체 공국의 청사로 쓰여졌던 건물로
94m의 높이에 가운데 튀어나온 탑이 있는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건물 안쪽 1층엔 베로키오가 조각한 '아카루를 가진 천사상'이 있고 2층에는 피렌체공국 당시
회의실로 쓰이던 600년이 넘은 방이 있다. 그리고 3층에는 천장화를 볼 수 있는데 입장료를 지불해야한다.
↑ 메디치가 내부 모습
↑ 구찌 박물관
↑ 단테 (1265 이탈리아 피렌체~ 1321) 생가
이탈리아 라벤나 사람이며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시인, 서유럽 문학의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다.
시뇨리아 광장에서 두오모 성당으로 가는 좁은 골목길에 단테의 초라한 생가가 있다.
현재 이곳이 단테의 생가였다는 증거는 벽에 붙어있는 단테의 토르소가 전부이다.
그가 이탈리아에 남긴 유산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현재는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 우측에 단테의 동상이 벽에 설치되어있는데 코가 참 큰 모양이다.
↑ 단테 생가 부근의 교회 건물들의 위치가 새겨져있는 석판의 모습이다.
↑ 그리고 가는 길에 있는 교회가 있는데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여기서 만났다고 한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전해오는 이야기는 단테가 계모 슬하에서 자라나 9살때 아버지를 따라 연회에 갔다가 베아트리체를 보게되고
단아함과 고운모습에 마음을 뺏겨 그의 인생이 베아트리체를 향한 마음으로 큰 영향을 받고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25살에 베아트리체가 죽고난 후 실망에 빠져있다가 사회에 열정적으로 발을 딛고 관료로서 두각을 나타냈고
그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린 당와 로마교황을 지지하는 구엘프 당의 싸움으로 로마에 감금되고
사형선고를 받는 등 우여곡절로 프랑스에서 도피생활을 하기도했던 파란만장한 삶을 가지기도 했다.
↑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즉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으로 두오모성당이라고도 한다. 도오모라함은 영어의 돔(dome)과 같으며
라틴어(語)의 도무스(domus)를 어원(語源)으로 한다. 영어의 돔은 반구형(半球形)의 둥근 지붕, 둥근 천장의 뜻으로 사용되는 데 대하여
이탈리아어의 두오모와 독일어의 돔은 대성당(大聖堂:cathédrale)을 말한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주교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을 말하는데,
큰 도시에는 모두 두오모 성당이 있으며, 그 중 밀라노와 피렌체의 것이 유명하다. 이 성당은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과 밀라노의 대성당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세번째지만 소장 예술품의 중요도는 베드로 성당에 견줄 만하다. 피렌체 대성당은 조토의 종탑, 세례당 그리고
대성당 부속 박물관이 함께 어우러진 복합공간이다.
대성당 부속 박물관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비롯하여 한 때 이 성당을 장식했던 르네상스 거장들의 조각, 회화, 금은 세공품들로 가득하다.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원래 성당에 있던 작품들을 박물관으로 옮겨 놓았다. 대성당을 비롯하여 건물 외벽에 보이는 조각들은
모두 모조품이며 진품은 박물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바닥에서 91 m의 높이에 이르는 이 거대한 원개는 고딕의 늑골(리브) 궁륭(穹?)의 구조에
브루넬레스키의뛰어난 창의가 곁들여 비로소 실현된 것으로 기부(基部)에서 탑 꼭대기에 이르는 굵은 8개의 대리석 리브와 그 사이를 메우는 벽돌로 된
8쌍의 구면(球面) 삼각형이 멋있는 대조를 이루는 풍부하고 힘찬 외관은 그야말로 피렌체시의 상징이라고 할 만하다.
↑ 지오또의 종탑(Campanile Giotto)
높이 85m의 거대한 고딕 양식의 종탑은 1334년 지오또에 의해 기동되어 안드레아 피자노와 프란체스코 랄렌리에 의해 완성되었다.
당시는 페인트와 같은 안료가 없었기 때문에 흰색과 녹색 대리석을 사용하여 외관을 조화롭게 구성하였으며, 근처의 두오모 성당과 성 요한 세례당과
조화를 이루어 질식할듯한 규모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지오토 종탑은 계단이 무려 414개라고 한다.
성당의 가장 높은 돔은 1463년 브루넬레스키가 제작했으며 건축 사다리없이 지어진 가장 큰 건축물이이자 최초의 르네상스식 건축물이었다
성당의 외관과 일치된 양식의 아름답고 화려한 종탑은 1334년 조토에 의해 제작되기 시작해 1359년 탈렌티에 의해 완성되었다.
성당의 쿠폴라보다 약간 낮으며 이 종탑의 꼭대기 까지는 414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 천국의 문
↑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설계로 착공되었다. 공사 도중에 그가 죽자 조토에 이어 A.피사노가 공사를 인계받아,
그 동안 조토가 새로 계획하였던 정면 오른쪽의 대종탑을 거의 완성하였다. 또한 그 뒤를 이어받은 프란체스코탈렌티는
1357년 이래 건물 규모의 확장을 추진하여 1421년경에는 폭 42 m의 삼랑식(三廊式) 회당부(會堂部)와 지름이 이와 맞먹는
광대한 8각 평면의 내진(內陣), 그리고 여기서 세 방향으로 내물린 제실(祭室)을 완성하였다.
↑ 건물 전체를 덮는 대원개의 프로포션은 전성기(全盛期) 르네상스의 이상이었던 원개(쿠폴라)중심의 구성의 선구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의미가 깊다. 또한 당내(堂內)에는 예술의 도시 피렌체의 대성당에 어울리게 부속 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조각과 회화가 보존되어 있는데, 베첼로와 카스타뇨 등의 프레스코 벽화, 기베르티의 성유물(聖遺物) 상자와
미켈란젤로의 조상(彫像) 《피에타》 등이 유명하다.
↑ 성당내부의 제단이 있는 곳의 사진
내부는 114m 높이에 베네디토 마이아노의 십자가, 안드레아 델 카스타니요와 파울로 베첼로이가 그린 2개의
대규모 기마천상화, 로비아의 채색도판으로 만든 아름다운 릴리프가 있다.
컵을 씌운듯한 반원형 지붕, 꾸뽈라에 그려진 바사리의 프레스코화 '창세기' '최후의 심판' 그리고
본당 뒤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삐에타가 있다.
↑ 천정 돔 성화
↑ 천정 돔 성화
↑ 천정 돔 성화
↑ 파이프 오르감
↑ 성당 내부 지하에는 평생을 꾸뽈라의 설계와 건축에만 매달린 브루넬레스키의 무덤과
두오모의 전신인 싼타레빠레타 교회의 흔적이 있다.
↑ 화장실이 필요하여 가죽 공예의 진수 Peruzzi 매장을 들르다
피렌체 관광을 마치고 이제 베네치아로 이동한다 버스로 약 2시간 정도 달렸다...
피렌체를 뒤로 하고 달린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간다 . . .
베네치아 도착후 호텔 MOND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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