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내 투어
바티칸 관광을 마치고 나와 로마시내 투어를 하는데 벤츠에서 만든 투어용 작은 SUV라고 해야하나 좁은 골목 같은 길을 자유롭개 운행할 수 있도록 만든 약 7인승 정도 차량을 타고 로마시내 곳곳을 누빈다.
대전차경기장
로물루스 시대에 경마와 육상 경기가 치러진 대연기장(Circus Maximus:대전차경기장이라고도 한다)은 제정시대에는 길이 약 610m, 너비 약 183m의 직사각형을 이루었고, 호화스러운 스탠드는 무려 30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
콜로세움을 뒤로 하고 팔라티노 언덕 남쪽으로 난 대로를 따라가면 오른쪽에 트랙 모양의 큰 벌판이 나온다. 아벤티노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 골짜기를 개간하면서 생긴 대전차 경기장(Circus Maximus) 자리다. 현재 지면보다 10m 아래에 원래 트랙이 있었다.
아벤티노 언덕은 로물루스와 레무스로 대표되는 두 언덕 주민의 다툼으로 로마시 역사에서 주변부로 밀리게 된다. 그 대신 팔라티노 언덕 반대편 골짜기, 곧 로마 광장이 정치와 경제 중심으로 자리잡으면서 이 골짜기 지역은 놀이문화 공간으로 바뀐다. 두 언덕의 경사면은 주민들이 구경하기 위해 좋은 자리가 되었고 팔라티노 아래의 계곡은 경주로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대전차 경기장에서는 전차 경기뿐 아니라 검투 경기, 사형 집행과 모의 해전, 야수 사냥-연극 등 다양한 경연이 벌어지기도했다.
로마의 초대 왕 로물루스부터 동로마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황제들의 궁전 팔라티노 언덕의 이야기는 2800년전 로물루스와 레무스부터 시작된다. 팔라티노 입구를 들어가면, 바로 만나게 되는 2천년 전의 유적 로마는 7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그 중에서도 팔라티노 언덕이 로마의 기원이다.
진실의 입
싼타마리아인 꼬스메딘 성당이다. 이성당의 입구에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진실의 입이있다. 보카 델라 베리타 광장에 한켠에 자리잡고 서있는 코스메딘 산타 마리아 성당(Santa Maria in Cosmedin)의 입구 한쪽 벽면에 진실을 심판하는 입을 가진 얼굴 모양의 원형석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진실의 입이다. 이 원형 석판은 해신 트리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이 원형 석판은 기원전 4세기경쯤 로마시대에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이라고 한다. 어원적으로 풀어보면 '보카 델라 베리타'란 말에서 보카(Bocca)는 입, 베리타(Verita)는 진실을 의미한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그레고리팩과 오드리 햅번이 주연한 코믹 로맨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와서 더욱 유명해졌다.
포로 로마노(이탈리아어: Foro Romano)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지로, 이탈리아 로마에 있으며 현재는 관광지로 매우 유명하다. 베네치아 광장과 콜로세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대 로마의 중심부인 포룸 로마눔의 유적지이다. 고대 로마 시절 대부분의 도시에는 포룸(영어 포럼의 어원)이라고 불리는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광장이 있었는데, 이 포로 로마노는 수도 로마에 개설된 최초의 포룸이며,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293년에 걸쳐 로마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으나,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하고 수도 기능이 라벤나로 옮겨지면서 이민족의 약탈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부터는 그대로 방치하다가 토사 아래에 묻혀 버렸다. 포로 로마노 발굴작업은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재의 유적들은 대부분 제정 시대 이후의 것이다. 사투르누신전 옆쪽으로 높이 23m, 폭 25m의 거대한 셉티무스 세베루스황제(기원후 203-205)의 문은 파르티아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개선문은 로마에 3개가 있는데 대표적인 개선문이 예루살렘에 대한 승리를 묘사한 티투스개선문과 위의 셈티무스 세베루스 개선문,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개선문(도미티아누스와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시대에 썻던 여러가지 재료를 섞어만든 개선문)이 있다. 이런 개선문에는 명확학 황제의 승리와 업적 등이 기록되어있고 정면이 거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특징이 있다.
이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는 죽은 영혼을 섬기는 애굽의 세라피스교 신나자였는데 황제 세베루스는 기독교나 유대교로의 개종을 금지하는 칙령을 내렸는데 이때만해도 북아프리카에는 기독교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북 아프리카에서 순교 당한 퍼피뉴아의 일로 기독교의 박해가 거세게 일어났는데 소아시아 폴리캅 교회의 순교 사건도 역시 터지게 되었고 그 후플라톤의 철학을 배운 저스틴 마터가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를 공개적으로 들고 아옴으로 그또한 순교당하고 여자 한명을 포함한 여섯명이 참수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렇듯 개선문은 예루살렘을 진격해 얻은 승리와 기독교 박해에 대한 전공으로 황제들의 칭송 사건이니 기독교인으로는 뼈 아픈 사건으로 만들어진 개선문을 바라보는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그러나 역사속에 한 사건이라 배울점도 많았던 포로로마노의 역사공부였던것 같다.
깜비돌리오광장
캄피톨리오 언덕과 시청사쪽으로 올라가기 전 전체가 다 보이는 언덕이 있다. 광장으로 오르는 계단과 광장 바닥은 미켈란젤로가 설계 했다고 한다.
판테온신전
벤츠 투어를 통해 잠시 우리가 다녀온 곳은 지금도 오랜 세월 동안에도 끄떡없이 견디고 있는 2000년 가까이 세워져있는 건축물의 견고성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지름이 약 43.3m이고 기단으로부터의 높이가 21.6m에 이르는 돔은 근대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는 가장 크다. 돔 안쪽을 받치는 벽돌 아치는 가장 아랫부분을 제외하고는 외부에서 확인되지 않는데, 정확한 공사방법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2가지 요소가 이 건물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알려져 있다.
콘크리트에 쓰인 모르타르의 뛰어난 질, 세심한 골재 선택과 분류가 바로 그것인데 건물의 기초 부분과 벽의 아래쪽에는 무거운 현무암을, 그 위에는 벽돌과 응회암(화산회로 형성된 암석)을, 그리고 돔의 가운데 부분에는 부석(浮石) 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것을 각각 사용했다. 판테온은 원래는 기원전 23년쯤 아그리파가 신전으로 지은 4각형 건물로 지어진 구조였으나 불에 완전히 타서 다시 재건하는 과정에서 하드리아누스황제의 명으로 건물 앞쪽에 아그리파의 이름을 새겨주어서 지금도 아그리파라고 하는 이름에 대히 익숙하긴하다.
그는 로마의 장군(집정관)이었다. 이 건축물은 그후 118~128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완전히 재건되었고 3세기초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와 카라칼라 황제 때 부분적으로 개축되었다. 콘크리트 구조에 벽돌을 덧댄 원형 평면의 건물로서, 벽 위에 거대한 콘크리트 돔을 올렸다. 판테온이라는 명칭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판(Pan)과 신을 뜻하는 테온(Theon)이 합쳐져 만들어 졌다.
판테온신전건물 둥근 외벽은 오래된 세월을 감당하지 못하고 많이 파손된 상태이나 내부는 그야말로 신축 건물이 따로 없을 정도의 내관을 자랑하고 있었으니 이들의 건축 기술과 토목 기술은 가히 세계수준임에 틀림없다. 판테온은 609년에 산타마리아로톤다, 또는 순교자 교회로 봉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판테온은 교황 보나파시오 4세에 의해 가톨릭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ad Martyres)으로 개축되어 사용되었는데 중세를 거치면서 건축물이 훼손되는 것을 그나마 막을 수 있었다. 대단한 규모의 구형 공간이 돔 중앙에 있는 지름 8.2m의 '눈', 즉 오쿨루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에 의해서만 채광되고 있다. 판테온 신전에는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다.
트레비분수
시원한 물줄기로 관광객들의 지친 몸과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로마의 대표 관광 명소.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갑자기 물소리와 함께 커다란 분수가 나타난다. 18세기 후기 바로크 양식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분수는 폴리 궁전의 한쪽 벽면을 배경으로 바다의 신 트리토네가 이끄는 마차가 파도를 가르며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트레비라는 이름은 셋을 뜻하는 '트레'와 거리를 뜻하는 '비아'를 합친 말로 '세 거리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뜻이다. 르네상스 시대때 교황들은 고대 로마제국의 상수도 시설들을 수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수로를 개발히여 물의 공급을 원활하게 했으며 이를 기념하기위해 많은 분수들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트레비분수였다.
"트레비 분수"는 교황 클레멘스 12세의 명을 받아 니콜라 살비에 의해 1732년에서 1762년 까지 30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완성 되었다. 분수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해신(海神) 트리톤이 이끄는 전차 위에 해신 넵투누스가 서 있는 모습이다.
스페인광장
우아하고 세련된 여인들의 모습과 광장 앞의 거리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명품점 쇼핑가인 콘도티 거리, 코르소 거리로 통해 있다. 여러번 이곳을 방문했지만 늘 활기찬 기운이 아곳을 감싸고모든 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속엔 그레고리팩과 오드리 헵번의 사랑이 담겨져있다. 원래 이곳 스페인 광장은 17세기 스페인영사관이 있던 자리다. 137개의 스페인 계단과 (Trinita Dei Monti ; 삼위일체교회)의 종탑과 곁에 하늘을 향해 서있는 오벨리스크가 아름답게 세워져있고 광장에는 보트 모양의 대리석 분수가 있는데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바르카시아 분수(조각배 분수)라 불리운다. 이곳에는 사진촬영을 하느라 젊은이들의 시선이 쏠려있고 이곳에서 바라다보는 계단의 많은 사람들은 그저 사랑이 가득담긴 행복한 나그네의 쉼터같아보인다.
베네치아광장
로마에서 가장 복잡한 곳으로 교통의 요지이다. 중앙에 위치한 건물은 일명 '비토리아노'로 불리고 있으며 이탈리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다. 기념관의 중앙부 계단에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고 그 앞의 꺼지지 않는 불을 항상 두명의 군인이 지키고 있다. 광장의 왼쪽에 있는 베네체아 궁전의 2층 테라스는 무솔리니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즘을 주창하며 군중들을 선동하던 장소이다.
베네치아 광장은 코르소 거리의 남쪽 끝에 있으며 로마 교통의 중심지로 6개의 주요 도로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 이 곳은 로마의 사육제 동안 벌어지는 경마 대회의 종착 지점에 교황 바오로 2세가 구상하여 완성하였으며 16세기 로마의 근대적인 도시 계획의 주요 성과물로 손꼽히고 있다.
1882년에 이탈리아의 초대 국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기념물을 세우기로 결정하여 광장 전체의 구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게 되였다.
광장 정면에 엠마누엘 2세 통일 기념관이 있고, 왼쪽에는 베네치아 궁전이 있으며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광장 정면에 있는 거대한 백악관은 비토리아노라고 부른다.
엠마누엘 2세 통일 기념관은 1885년부터 25년간 건축되어졌으며, 이탈리아의 통일을 달성한 엠마누엘 2세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서 네오클래식 양식 으로 만들어 졌다. 베네치아 궁전(Palazzo Venezia)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의 주요 작품으로 피에트로 바르보 추기경이 자신의 저택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운 궁전으로 이후 프랑스 국왕 샤를 8세에게 넘어갔다가 다시 16세기 중엽에는 베네치아 대사관이 되었다. 그후 베네치아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 병홥되고 나서는 그 나라의대사관이 되었으나 궁전의 명칭은 그대로 사용되었다.
콜로세움
플라비아누스 황제 때 세워진 것으로 원래는 플라비아누스 원형경기장이라고 불렸다. 70~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공사를 시작해 80년 티투스 황제 때 100일간의 경기가 포함된 제전을 위해 공식적으로 헌정되었다. 82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최상층을 덧붙여 공사를 완성했다.
콜로세움의 야경콜로세움(Colosseum)은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로마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원형 경기장이다. 콜로세움은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도무스 아우레아)의 정원에 있던 인공 호수 자리에 세워진 것이다. 정식으로는 ‘플라비우스 원형극장(圓形劇場)’이라고 한다.
플라비우스 왕조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중세에는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으로 쓰였다. 제정기(帝政期) 로마의 복받은 로마 시민의 오락시설로서, 여기에서는 글라디아토르(劍鬪士)의 시합, 맹수연기(猛獸演技) 등이 시행되었다.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外壁)은 높이 48m로 4층이며, 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式)·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원주(圓柱)가 아치를 끼고 늘어서 있다. 내부는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放射狀)으로 설치되어 있다.
콜로세움의 명칭은 근처에 네로의 거상(巨像:colossus)이 있었던 데에 유래한다. 콜로세움은 검투사들끼리의 싸움이나 맹수들과의 싸움을 시민들에게 구경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일체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이 거대한 원형극장은 4층으로 되어 있었다. 1층은 높이 10.5m의 도리아식 반원주, 2층은 높이 11.85m의 이오니아식 기둥, 3층은 11.6m의 코린트식 기둥으로 되어 있고, 4층은 관중들이 작열하는 햇빛을 피할 수 있게 벨라리움이라는 천막을 고정시키기 위한 장대장치를 지탱하는 벽으로 되어 있다. 이외에도 계단과 독립 공간, 즉 갈레리아가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내부로는 들어가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로마시내 관광을 마치고 속소로 간다.
로마에서 버스로 약 1시간 가량 떨어져있는 이탈리아 라치오주 프로시노네현 에 위치하고 있는 Boschetto 호텔
교황을 비롯하여 많은 유명인들이 신장결석을 치료한 신비의 온천수 어쩌구...... 전형적인 산악 휴양 마을로 마을 전체가 노인들로 가득하다고 하며, 최근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진출해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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