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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최양업 신부

<6> 제1부 신부의 어머니 - 먼 길(6)

by 세포네 2008.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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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이었다. 동쪽 하늘이 희뿌옇게 변하면서 날이 밝아왔다. 채비를 마친 하상이 대건과 양업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은 가는 길이 험하니 특히 조심들을 해야 한다. 그 험하다는 청석골을 넘어야 하고, 금천으로 가자면 월정이라는 데를 지나가야 하는데 거기를 지키는 관졸들이 아주 못되기로 소문이 나 있어.’

새벽바람이 차다. 말을 할 때마다 하상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나왔다. 대건이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청석골이면 꺽정이가 있었다는 거기지요? 꺽정이 있던 데가 어떤 덴지 잘 봐 둬야겠다.’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였다. 처음 듣는 소리라 아무래도 궁금했던 양업이 대건에게 다가서며 속삭이듯 물었다.

‘대건아. 꺽쟁이가 뭔데?’

어렸을 때 마을 앞 냇가에서 잡히곤 하던 꺽쟁이라는 못생긴 물고기가 있기는 했다. 대가리만 클 뿐 몸통에 살이 없어서 구워놓아도 먹어볼 게 없던 꺽쟁이. 생기기도 참 못 생겨서 잡혀 봤자 오히려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듣던 물고기였다. 그 꺽쟁이가 이 산 속에 있을 리가 없었다.

대건이 크크크 웃었다.

‘꺽쟁이가 아니라 임꺽정이다. 의적 임꺽정. 부자들 재산 털어서 불쌍한 사람들한테 나눠준 의적이야.’

뭐 그런 일도 있었나. 대건이도 아는데 어째 나만 몰랐을까. 양업은 기가 죽는다. 당연하지. 어머니 아버지가 집에서 예수 마리아 이야기 밖에 안 하니.

방제가 어른스레 한 마디 했다.

‘말이 좋아 의적이지, 의적은 무슨.’

셋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상이 소리 없이 웃었다.

‘너희들이 임꺽정이 이야기를 하니까 말인데, 다른 건 말고라도 이건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가 그쪽을 지나가겠다만, 황해도 황주, 재령 일대가 갈대로 유명한 곳이란다.’

길동무 삼아 하상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갈대가 많은 곳이라 당연히 그걸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그곳으로 옮겨갔겠지. 꺽정이도 원래는 경기도 양주 근방에서 갈대로 고리짝을 만들던 고리 백정이었다더라. 그래서 갈대밭이 많은 황해도로 이사를 했나 본데, 갑자기 갈대밭을 나라님 꺼라고 정해 놓고 갈대를 사가라는 거야.’

하삼도라고 했다. 한양 아래쪽 경상 전라 충청 세 지역을 부르는 말로, 나라 안의 비옥한 땅은 그곳에 모여 있었다. 조선 중기로 들어서자 북방지역의 개간책으로 황해도의 해택지(海澤地)를 비롯한 많은 땅을 농민들을 부려서 개간하게 되는데, 이렇게 이루어진 땅과 갈대밭을 진전(陣田)이라는 이름으로 나라에서 모두 탈취해 버린다. 궁중에서 쓰는 식량에서부터 노비까지 갖가지 왕실의 비품과 재산을 관리하던 내수사(內需司)에 이 갈대밭을 소속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땅을 개간한 농민들을 전호(田戶)라고 하여 그 땅의 소작인으로 삼아 버렸다.

저 혼자 돋아 올라 저 혼자 자라던 갈대까지 나라에 빼앗긴 꼴이었다. 겉으로야 나라의 것이 되었다고는 하나, 이때 개간을 주도하고 농토와 갈대밭을 이익으로 챙긴 자들은 임금의 아들이나 사위들 그리고 이들과 혼인을 맺은 재상들이었다. 임금의 친척들이 휘두르는 훈척정치의 폐해가 이러했다. 백성의 삶을 헤아리지 못하는 지배층의 작태가 황해도 농민들의 저항에 불씨가 되었던 것이다.

‘갈매기도 제집이 있는데, 이거야 갈대밭도 나랏님 꺼라니.’

한숨이 깊어져 갔다.

‘고리백정이며 갖바치들이 돈 내고 갈대를 사서 쓸 수는 없지. 형편이 그렇게 되자, 고리짝 하나를 바치면 갈대 한 다발을 가져다 쓸 수 있게 하는데, 그런데 그게 내가 알기로는 갈대 열 다발이 있어도 고리짝 하나를 만들기가 힘들었나 보드라. 도둑이라는 게 말이다, 누구는 좋아서 도둑이 된다든. 개중에야 태어난 성정이 그런 자들이 있기야 하겠지만, 다 제 사정이 물불 안 가리게 급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거지. 그런 연유로 황해도에서 도둑이 떼로 생겨나고, 그게 모여서 덩어리가 된 게 꺽정이 일당이었는 거야.’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는 양업과 달리 방제는 어쩐 일인지 실실 웃고 있다. 양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눈알이 뒤집힐 일이 있기로서니 그렇다고 다 도둑이 될까.

‘그러니까, 어떤 일에도 다 까닭과 연유가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하상이 마음속으로 놀란다. 이 녀석 봐라. 사안을 꿰뚫는 눈이 제법이네.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이 제일 부진했던 곳이 황해도였다. 그 까닭도 임꺽정을 비롯한 농민들의 저항으로 황해도 일대가 그만큼 여력을 잃고 피폐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행은 고리를 이어서, 황해도 사람들은 한 동안 벼슬살이에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부진했던 의병활동을 조정에서는 나라에 배타적인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상이 하나라도 가르치자는 마음에서 뒷말을 달았다.

‘호랑이 담배 먹던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양업이 말처럼, 세상 움직임을 눈에 보이는 하나로만 보지 말고 모든 일에는 앞뒤 흐름이 있지 않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도록 해. 그러면 느껴지는 게 있을 거다.’

세상의 억울함을, 들쑥날쑥 한결같지 못함을, 그런 모순을 없애보고자 임꺽정이가 큰 뜻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관청에서 서울로 보내기 위해 백성들에게 긁어모은 봉물도 옳은 물건은 아니다. 그러나 꺽정이는 결국 그런 봉물이나 빼앗던 화적떼일 뿐이지. 양반이나 부자들의 집을 쳐들어가 빼앗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고도 하지만, 그것도 객기요, 분풀이의 하나는 아니었을까. 그래서야 어떻게 세상살이의 근본을 바꾸겠는가. 그걸로 세상을 바르게 세울 수는 없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하상은 아침 햇살 저편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청석골을 바라본다. 문득 하상은 자신을 보고 꺽정이가 말하는 것만 같다. 보아라.

사람마다 뜻이 다르고 길이 다르지 않더냐. 나는 화적의 길을 갔다지만 그래서 너는 겨우 천주학쟁이가 되었더냐. 어느 길이 옳은지를 누가 알까.

헌데, 너나 나나 관졸을 피해가며 숨어살기는 둘이 다 매한가지로구나. 으하하하.

멀리 뒤따르는 신철과 유 신부의 행렬도 조그만 점이 되어 골짜기로 들어서고 있었다. 하상의 옆에서 발을 맞춰 따라 걸으며 양업은 능선이 겹치고 겹치는 사이로 굽이굽이 뻗어 있는 길을 바라본다.

‘참 산세가 험하긴 험하네요. 어떻게 저런 데 숨어서 소굴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그도 그렇다만, 청석골을 생각하자면 애석하기도 하지. 저런 요새를 나라를 지키는데 썼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몽고군이 내려올 때 여기서 막으면서 시간을 지체시키기만 했어도 나라가 그렇게 황당한 일을 당했겠니.
중전은 강화도로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뿔뿔이 흩어지며 그 꼴을 당하다니.’

뒤에서는 대건이 목소리를 죽이며 소곤거리듯 방제에게 물었다.

‘방제 형. 그런데 바오로 아저씨는 어떻게 저렇게 아는 게 많으시대?’

‘몹쓸 교난으로 일곱 살에 아버님 여의고,..그렇게 크신 분 아니니. 스무 살이 넘어서는 배운 게 너무 없다고 가슴을 치며 저 깊은 함경도 어딘가로 학식이 깊은 분을 찾아가서 몸을 닦았다고 하잖아. 어련하시겠어.’

탑고개를 동쪽으로 바라보며 청석골 험준한 골자기로 들어서자 마른 칡덩굴이 뒤덮인 바위들이 깎아지른 듯이 앞을 막아섰다. 각이 져 치솟은 절벽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골짜기를 빠져나왔을 때 그 험한 산세를 뒤돌아보며 양업은 긴 숨을 내쉬었다. 돌밭길을 걷느라 그랬는지 대건이 조금씩 발을 절고 있었다. 이틀 만에 발이 부르튼 것도 대건이었다.

청석골을 지나자 황해도였다. 청석관(靑石關) 관문에 기해교계(機海交界)라고 쓰여 있듯이 이곳이 경기도와 황해도의 경계였다. 들판에는 녹지 않은 눈이 그냥 남아 있었다. 다만 햇볕을 받은 쪽 밭이랑만 눈이 녹아서 줄무늬를 이루며 구불구불 뻗어나갔다.

의주로 가는 길 가운데 제일 까다롭다는 월정에서의 짐 검사를 피하기 위해 일행은 다시 둘로 나뉘었다. 짐꾼 차득이만을 데리고 광열이와 하상이 읍내로 들어가고 하상은 유 신부를 모시고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멀리 산길을 타며 돌아가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길이 험합니다만 신부님은 저희들이랑 함께 가셔야겠습니다.’

조선말이 여간 서툰 게 아닌 유 신부를 읍내로 들어가게 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상은 세 소년을 앞서 가게 하고 맨 뒤에서 걸었다. 대건도 방제도 추위에 코들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고 있는 셋의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저들이 가는구나. 이제 사제가 될 조선의 아들들이 가는구나. 늠름하기도 하여라. 얼마나 애타게 그리던 조선의 사제인가. 그날 아침, 길 떠나는 소년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부여잡고 축복을 해 나가던 모방 신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님. 주님께서 저들과 언제나 함께 하실 것을 믿사옵니다. 저들을 보호하소서.

인적 없는 길이어서 놀랐는가. 이따금 푸드득거리며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새들이 날아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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