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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최양업 신부

<8> 제1부 신부의 어머니-먼 길 (8)

by 세포네 2008.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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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 속에 서흥을 지났다. 그날은 다들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봉산을 지나던 날은 한결 추위가 심해져서 사이사이 주막에 들러 몸을 녹여야했다. 언 길에서 연신 미끄러지는 건 유 신부였고, 차득이를 놀려먹다가 제풀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일행을 웃게 만든 건 한선이었다.

을수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봇짐을 다시 지고 끙끙거리며 일어서는 한선을 보고 을수가 말했다.

‘옛말에 그른 거 있더냐. 헤엄 잘 치는 놈 물에 빠져 죽고, 나무에 잘 오르는 놈 떨어져서 죽는다더라. 앞을 봐라. 어린 도련님들도 화살같이 가는데 나잇살이나 처먹는 네가 그래 자빠지고 있냐.’

주룩주룩 모래를 흩뿌리듯이 내리는 싸락눈을 맞으며 그들은 걸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싸락눈이 따끔거리며 얼굴을 때려 양업은 귀를 덮게 되어 있는 털모자를 끌어당겨 입을 가리고 걸었다. 몸을 녹이러 주막에 들러 다리를 펴자면 몸이 얼어서 뿌드득거리며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엉거주춤 허리를 펼 생각도 못하는 일행을 둘러보면서도 하상은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다들 살긴 산 거야? 난 얼음덩어리들이 걸어가나 했어.’

그럴 때 지지 않고 한마디 하는 건 대건이었다.

‘바오로 아저씨 수염이야 말로 얼음 덩어리예요.’

‘나도 턱이 얼어서 웃다가는 턱 떨어지게 생겼다. 동장군께서 심술이 나도 단단히 나셨나 보다.’

황해도를 빠져나가자면 거쳐야 하는 곳이 황주와 봉산 사이에 있는 구월산 고갯길이었다. 동선령을 넘어가는데 하필이면 제일 추울 건 뭐야. 이건 뭐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는 거네. 신철이 허옇게 입김을 내뿜으며 중얼거렸듯이 한양을 떠난 이후 가장 추운 날 그들은 동선령을 뚫고 나가며 구월산을 넘었다.

구월산 동선령은 한양에서 의주까지의 먼 길에 반드시 거쳐야 했던 길목의 하나였다. 그 빼어난 풍광으로 해서 일찍이 조선십경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는 곳이었다.

남쪽으로는 제주의 망망대해, 포항 장기곶의 일출, 하늘과 땅을 물들이며 펼쳐지는 변산 앞바다의 낙조, 별처럼 흩어져 고기를 잡는 연평도 어선들의 불빛들이 다 조선십경의 하나로 이름이 드높은 절경들이었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금강산의 가을 단풍이나 대동강변의 봄 경치 그리고 백두산 천지의 장관을 시작으로 압록강을 지나가는 배를 꼽았다. 이와 함께 조선십경으로 알려진 곳의 하나가 구월산 동선령의 풍광이었다.

동선령 고갯길에는 여기저기 음험하게 굴들이 뚫려 있었다. 지나가는 그들의 발걸음에 놀랐는지 컴컴한 굴속에서 박쥐들이 튀어나와 어지럽게 날아올랐다. 조선십경이라지만 찬바람이 휘몰려 내려오는 동선령은 적막하기만 했다.

그리고 드디어 평안도로 들어섰다. 여기서부터 길 이름은 대동도(大同道)로 바뀌었다. 서해안 지역의 주요 거점을 따라 뻗어 있는 이 길이 가 닿는 곳이 의주였고 거기서 압록강을 건너 사람이 살지 않는 허허벌판 백여 리를 지나서야 조선과 중국의 국경인 변문과 만나게 되어 있었다. 여전히 길은 멀고 멀었다.

일행을 독려하느라 말이 많아진 건 하상이었다.

‘이 길을 가자니 화냥년 생각이 안 날 수가 없구나.’

이 점잖은 어른에게서 무슨 이런 상소리가 나오나. 제일 놀란 것은 양업이었다.

‘화, 화냥년이라고요? 어르신 지금 화냥년이라고 하셨어요?’

‘그래. 환향녀(還鄕女)가 화냥년이 되었으니, 그게 나쁜 말만도 아니란다.’

병자호란을 겪으며 조선의 임금은 한강 기슭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술잔을 올리며 굴욕의 항복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비롯한 60여 만의 백성은 인질이 되어 봉천으로 끌려갔다. 이들은 2년이 지나서야 속환금을 내면서 애쓴 끝에 수만 여명이 귀국길에 오른다.

그러나 이때 돌아온 여인들은 중국에서 절개를 잃고 몸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내몰렸다. 이에 임금은 대동강 한강을 비롯하여 낙동강 섬진강 영산강 등을 회절강(回節江)이라 이름하고, 여인들로 하여금 이 강에서 몸을 씻도록 한다.

비록 환향녀들이 절개를 잃고 몸을 더럽혔다고는 하나 이는 나라가 처했던 전란의 탓이지 어찌 여인들 스스로의 잘못이냐면서 민심의 흉흉함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회절강에서 몸을 씻는 것으로 환향녀들의 어두운 과거를 묻고 따듯이 맞아들이도록 하라는 조치였다. 화냥년이란 그렇게 환향녀가 입과 입을 건너며 변해 버린 말이었다.

하상이 구수하게 늘어놓는 이야기에 즐거워하기는 대건이었다. 그는 방제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웃어댔다.

‘형. 화냥놈은 없었을까? 환향남(還鄕男)이 변해서 화냥놈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야.’

‘쓸데없는 소리는.’

평양을 앞두고 겨울비가 내렸다. 그날 하상은 하루를 쉬기로 하고, 주막에 부탁을 하여 닭을 잡게 했다. 이미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기에 몸을 추슬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제일 좋아한 건 큰 덩치에 걸음이 느려 꾸물대곤 하던 을수였다.

‘요놈의 겨울비가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리네. 그럼, 마음만 급하다고 다 되는 일도 아니지. 게다가 이거 닭다리까지 뜯게 되었으니.’

가야 할 길이 그만큼 늦어지지만 덕분에 하루를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양업은 방문 밖에서 들리는 낙숫물 소리가 싫지 않았다. 낮잠을 자고 밖으로 나오니, 두 손을 엇갈리게 옷소매에 집어넣고 앉아 하상은 비 내리는 객주집 마당을 내다보고 있었다. 양업이 옆에 가 앉았다. 하상이 물었다.

‘대건이랑 방제는?’

‘많이 고단했나 봅니다. 또 자고 있어요.’

‘나가 떨어졌겠지. 너도 뜨듯한 방에 누워서 좀 쉬지 그러니.’

‘저도 한잠 잤습니다.’

바람이 불어 찬기운이 집안으로 몰려들 때마다 이마가 선득선득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 싸늘함을 즐기며 두 사람은 겨울비 추적거리는 마당을 내다보며 앉아 있었다.

양업이 물었다.

‘혼자 앉아 계시던데…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함경도 무산에 가서 지내던 겨울 생각을 했다.’

‘함경도는 더 춥나요?’

‘무섭게 춥지. 오줌을 누면 고드름처럼 얼어서 떨어진다는 말이야 허튼 소리라 해도, 그렇게 추운 겨울을 나도 처음이었단다.’

함경도 무산으로 유스티노 어른을 찾아갔던 때를 하상은 떠올리고 있었다. 돌아가신 게 벌써 여섯 해 전이다. 아흔 둘에 돌아가셨으니 험한 세월, 볼 것 못 볼 것 참 많이도 겪으신 어른이지.

젊은 나이가 하루라도 더 가기 전에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 한몸을 바쳐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깨닫기 위해 이름만 듣던 어른 조동섬 유스티노를 찾아 함경도까지 갔던 그때를 하상은 생각했다.

그 학문과 덕성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뜻을 품은 천하의 젊은이들이 문하로 몰려들던 조동섬이었다. 그가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함경도 무산으로 귀양 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건 하상이 스무 살 때였다. 조선교회가 발아하던 초기의 지도자 권철신이 경기도 용문사에서 여드레 동안 버티고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언의 수련을 할 때 함께 있던 분도 조동섬이라고 했다. 그분이 자신의 고향 마재 부근의 양근 출신이라는데 더욱 마음이 끌렸는지도 모른다. 길은 여기 있었구나 불현듯 깨닫고 하상은 천리 먼 길을 걸어 함경도로 조동섬을 찾아갔고, 그 밑에 머물면서 다시 새롭게 한문을 익히며 교리연구에 전념했다. 무엇보다도 교우들이 그토록 목말라하는 신부를 맞아들이기 위해 온 힘을 모으기로 결심한 것도 조동섬의 지도와 격려가 큰 디딤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젊은 자네들이 나서서 어떻게 하든 조선교회를 다시 세워야하지 않겠냐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는데… 그게 벌써 몇 년이냐. 이루어지는 일은 더디고, 내 그릇이 작은 게 부끄럽고 안타깝기만 하구나.’

말을 마치며 하상이 일어섰다.

다음 날, 겨울비가 그치면서 추위가 몰아닥쳤다. 대동강은 강변에 띠를 이루며 뻗어 있는 긴 숲에 싸여 몸을 들어내지 않고 숨어 있었다. 평양의 외곽을 동서로 이으며 10여리가 넘게 뻗어 있는 숲, 장림이었다. 그 숲길을 걸어서 얼음으로 뒤덮인 대동강을 그들은 어둠 속에서 건넜다. 평양의 동쪽, 대동문으로 숨어든 일행은 밤길을 더듬어 평양을 빠져나갔다.

하상은 평양을 지나며 내내 어금니를 굳게 물고 있었다. 밤이 늦어 무리를 하면서라도 한걸음에 평양을 빠져나가기로 한 것은 하상의 생각이었다. 왜 저 어린 아이들에게 황주나 평양을 보여주고 싶지 않겠는가. 적벽강의 누대에 오르면 날개를 달고 신선이 되어 올라가는 것 같다고 해서 승선루(昇仙樓)라고도 불리는 황주의 월파루나 겹겹이 비단을 펼쳐놓은 것 같은 오묘함과 웅건함이 어우러진 대동강의 여러 절경을 어린 그들에게 왜 보여주고 싶지 않으랴. 저들이 떨치고 일어서서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할 조선의 산하가 아닌가.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더 큰 일을 위해서, 곁눈질을 할 시간이 없다.

그런 아쉬움 때문이었으리라. 하상은 평양을 빠져나오며 팔을 둘러 대건의 어깨를 안았고, 볼을 감싼 방제의 명주 수건을 풀어 다시 감싸 주었다. 그리고 양업에게 다가가 그가 짊어진 봇짐을 매만지며 어깨띠를 고쳐 매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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