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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다시보는인천교구

46. 인천교구의 과거와 현재

by 세포네 2007.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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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은 약 4백2십만의 인구로 동북아의 관문이며 서해의 관문 황해권 중심항만 도시로, 나라에 큰 외침(外侵)이 있을 때에는 전화(戰禍)를 많이 입었기에 일찍부터 복음의 씨가 전해졌다. 1961년 인천대목구 설정당시 교구의 관할지역은 인천시, 부천군 도서(육지제외), 강화군, 김포군, 황해도 옹진군을 포함했다. 당시까지 1명의 주교와 15명의 신부가 탄생한 지역을 관할하게 된 인천 교구는 답동, 송림동, 부평(현 부평2동), 김포, 강화 등 5개 본당과, 메리놀회가 전교하면서 설립된 도화동, 북성동(현 해안), 연평도, 백령도본당을 포함하여 총 9개 본당을 관할하게 되었다. 

1962년은 한국 천주교회에 교계제도가 도입된 해로서 의미가 큰 해였다. 이어 한국 가톨릭 교계 제도의 설정에 따른 각 교구의 설정 및 주교 착좌식이 있었는데, 인천 교구가 포교지의 제도를 벗어나 정식 교구로 승격하게 되었다. 인천 교구의 교구 설정식 및 주교 착좌식은 1962년 7월 1일 주교좌 답동본당에서 거행되었다. 그 당시 1명의 주교와 19명의 사제가 있었다. 그리고 공소 66개, 신자 28,107명(인천교구내 총인구 663,308명), 수도자99명, 대신학생 14명, 소신학생 23명이 있었으며, 병원 2개, 보육원 2개, 양로원 1개, 유치원 2개, 초등학교 1개, 중학교가 2개, 고등학교 2개를 경영하였다.

 교구가 설정 된지 45년이 지난 현재 인천 교구는 내, 외적으로 많은 성장을 해왔으며 그 중에서도 사회사업분야의 획기적인 도약으로 교구민을 포함하여 지역시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며 교회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왼쪽사진 : 2006. 11. 사회복지센터 축복식)

2006년 인천교구의 교세통계에 의하면 교구관할지역은 인천광역시, 경기도 김포시, 부천시, 시흥시 일부(계수동, 과림동, 금이동, 대양동, 도창동, 매화동, 무지동, 미산동, 방산동, 신천동, 안현동, 은행동, 포동. 안산시 일부(대부동) 이다.

본당수는 104개로 확장되었고, 주교 2명(은퇴1), 신부 263명(교구, 선교회, 수도회, 은퇴 신부를 포함한 총 수), 신자수 407,616명, 남자 수도자 113명, 여자 수도자 557명, 대신학생 149명, 선교사 1명, 유치원 11개, 초등학교 1개, 중고등학교 2개, 가톨릭대학교 1개, 신학원 1개, 사회사업분야의 종합복지시설 10개, 노인복지 17개, 장애인복지 9개, 행려자복지 4개, 교정복지 1개, 의료복지1개, 상담복지 10개 등의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이 밖에 의료사업으로 종합병원이 1개, 문화사업으로 문화관 3개, 기념관 1개, 사적지 2개, 피정의 집 10개, 연구소가 6개가 있다. 

이렇듯 교구 설정 50주년을 앞두고 혁신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된 것은 하느님의 섭리적인 돌보심과 교구민들의 깊은 신앙심, 사목자들의 교회를 위한 미래지향적 사목비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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