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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다시보는인천교구

45. 인천교구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발족

by 세포네 2007.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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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신도사도직 협의회는 ‘평신도 사도직 교령’에 근거를 두고 구성된 평신도의 협의 기구로서, 복음선포와 인간 성화에 힘쓰며 현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현세 질서를 완성하는 활동을 펼치며,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 인간 구원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평신도 단체는 1795년 주문모 신부의 지도로 구성된 명도회이다. 1968년에 ‘전국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가 발족되었고 이어 전국 각 교구와 본당에도 구성되어 교회발전에 기여해오고 있다.
인천 교구에서는 1967년 2월 28일 교구 사목 위원회가 구성되어 평신도 사도직 활동을 전개했다. 이어 1979년 3월 18일 인천시 중구 답동 3번지에서 각 본당 평신도 대표 40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열고 회칙을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6월 24일 첫 행사로 가톨릭 회관에서 주교 초청 간담회를 개최하여 평협 운영 문제를 토의하고, 10월 20일부터 이틀간 제1회 평협 연수회를 개최하였다. 

1981년 2월 결성된 교구 평협은 전례교육과 각 본당 구역 분과장 간담회, 성직자·수도자·평신도 합동 연수회를 개최하였다. 이어 1981년 6월 6일 인천교구 설정 20주년 기념 성체대회를 주관했다. 1983년 2월 구성된 3대 평협은 지구 협의회 회의를 가짐으로써 본당과의 교류는 물론 화합에 큰 몫을 했다. 1984년에는 여성부를 신설하고, 한국 천주교 2백주년 기념행사를 적극 지원하였으며 순교 선열들의 교회 창립 정신의 계승 발전에 힘을 기울였다. 

1985년 2월 제4대 평협이 구성되었는데 전반기는 3대 평협 때와 같은 맥락에서 활동을 전개하였고, 1986년에는 KBS 시청료 거부 운동 등 민주화로 가는 길목에서 교회와 함께 정의 평화를 이룩하려는데 일조했다. 1987년 2월 제5공화국의 독재 정권하에서 민주화라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민주 쟁취를 위한 시위와 성명서 발표 등 민주화 운동의 일익을 감당해야 하는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도직 활동에 전력했다. 특히 평신도 지도자 양성을 위한 ‘신앙교리 학원’을 개설하여 제1기생 2백 명을 배출하기도 했다. 

교구 평협은 1989년 11월 2일 제12차 정기 총회로 8대 평협을 구성하여 임기를 2년으로 연장하도록 평협회칙을 개정하고 회장단 및 일부 임원의 보강과 개편이 있었다. 현재까지 임기 2년 제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2007년 2월 제17대 평협이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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