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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다시보는인천교구

43.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발족

by 세포네 2007.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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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바오로 6세는 사회 정의와 평화를 세계적으로 증식시키기 위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제정한 ‘현대 교회에 있어서의 사목 헌장’의 요청에 따라 1967년 교황 직속의 ‘정의 평화 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이는 크리스챤 공동체로 하여금 그들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고 자기의 가정, 직장, 사회에서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주교 회의에서 가톨릭 구제 위원회 한국지부장인 캐롤 몬시뇰에게 한국 정의 평화 위원회의 설립을 위임하여, 1970년 8월 24일 대전 성모여고에서 전국 가톨릭 대표 24명이 참여하여 설립하였다.

인천 교구에서도 1976년 10월 30일 ‘한국 천주교 정의 평화 위원회 인천 교구 위원회’를 구성하여 교구장의 인준을 받고 김병상 몬시뇰이 초대 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1970년대의 인천 정평위 활동은 한국 정의평화위원회 교구 위원회의 성격이 강해서 본부 정평위의 사업 방향에 입각하여 사업을 시행하였다. 즉 전국 정평위에서 주최하는 사회 정의와 관련된 세미나에 참석하였고 1월 1일에는 평화의 날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신자 교육으로 사회에 대한 가르침과 그 역할에 대한 의식 개발을 위하여 교구 내 사목 위원을 위한 피정을 실시하였다. 또한 신자들의 기도문을 작성, 본당에 배포하여 억압받고 소외당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 운동도 전개하였다.

1980년대에는 광주 사태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추모미사를 봉헌, 희생자를 위해 기도하고 이 땅의 민주화와 정의 평화 실천을 위해 기도하였다. 그리고 구속자와 가족을 위한 모금을 교구 내 각 본당에 의뢰하여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기도 했다. 

1986년 12월부터는 ‘정의 평화’라는 월보를 발행하여 왜곡된 보도로 숨겨진 내용들을 신자들에게 알리기 시작하였다. 또한 KBS의 공영 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촉구하는 시청료 거부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87년 6월 민주 헌법 쟁취를 위한 서명을 전개하여 신자 및 일반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인천 교구 정평위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구성되었으며, 사업내용으로는 첫 번째, 사회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전 신자를 대상으로 강연회와 미사가 있었다. 두 번째, 양심에 입각하여 구속된 노동자, 학생, 지식인 등을 위하여 모금 운동을 전개, 구속된 양심수와 그들의 가족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변호사를 위촉하여 법률적인 지원을 했다. 세 번째, 주보 및  정평위의 기관지인 ‘정의 평화’ 인쇄물을 통하여 은폐되고 있는 진실을 알리고 중요한 사회문제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천주교회 입장을 대내외에 표명하였다. 네 번째, 교구내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했다. 다섯 번째, 정부 시책에 사회 정의와 위배되는 사항이 있을 때 이를 시정토록 정평위 명의로 관계 기관에 질의서를 보냈다. 여섯번째, 통일문제, 노동문제 등 우리 현실에서 시급하게 요구되는 일들을 세미나와 연수회를 통하여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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