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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다시보는인천교구

44. 1968년 인천교구 꾸르실료 출범

by 세포네 2007.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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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르실료란 ‘복음화를 위한 단기 교육’과정으로 강습이나 피정과는 구별된다. 이 운동은 1940년대 스페인의 주교인 후안 에르바스(Juan Hervas) 주교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꾸르실료 운동은 1967년 5월 꾸르실리스타인 주한 미 평화봉사단장 케빈 오노넬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인천교구에는 1968년 1월 25일 인천 박문여고에서 남성 제1차 꾸르실료가 열렸고, 여성 제1차 꾸르실료는 이보다 8년 뒤인 1976년 7월 29일 ‘인천기도의 집’에서 실시되었다. 꾸르실료에서 강조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신심보다는 은총의 신심이다. 

꾸르실료(cursillo) 운동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 가지 단계의 방법을 사용한다.  제1단계(the precursillo stage)로 환경이 다른 사람들과 교제의 기회를 마련한다. 제2단계(the3-day exercise stage)로 그룹원들과 함께 꾸르실료 교육을 받으면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유능한 평신도 사도로서 역할을 다하게끔 한다. 제3단계(the postcursillo stage)로 꾸르실료에 참가한 사람들을 묶어 주어 유능한 사도로 자신의 사명에 충실히 활동하게 한다. 이 모임을 울뜨레야(ultreyas)라고 부른다. 꾸르실료 운동은 꾸르실료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꾸르실료를 통하여 그리스도교인 지도자를 양성하고 그리스도교인의 생활을 쇄신함과 동시에 사회를 복음화 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인천교구에서 꾸르실료가 실시된 동기는 교구장 나길모 주교가 1967년 8월 서울대교구에서 실시된 남성 제2차 꾸르실료를 수료한 데서 시작되었다. 나길모 주교는 인천교구에 꾸르실료를 도입하기 위해 서울교구 남성 제3차 꾸르실료에 강의선 신부와 오춘근, 그리고 김규호를, 제4차에는 조태진, 박영호, 안정환을 각각 보내어 수료하게 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인천교구 남성 제1차 꾸르실료를 실시, 성직자 5명과 평신도 34명 등 모두 39명의 꾸르실리스타를 배출해 냈다. 한편 인천교구 여성 꾸르실료의 출범은 서울대교구 꾸르실료 임원진에 의해 1-2차까지 실시되고 3차 꾸르실료부터 비로소 인천교구 임원진들에 의해 실시되었다. 인천교구에서의 꾸르실료는 1990년 8월까지 22년동안 남성 57차, 여자 51차 꾸르실료가 실시되어 성직자 57명, 수도자 97명, 평신도 4,835명 등 4,989명의 꾸르실리스타가 배출되었다. 

인천교구 꾸르실료 초대 사무국 임원은 지도신부 강의선, 주간 오춘근이었다. 인천교구 꾸르실료 사무국은 출범 1년만인 1969년 2월 제1차 교구 울뜨레야를 개최했으며 1979년 10월 9일에는 제8차 전국 울뜨레야를 개최하는 등 눈부신 활동을 보였다. 그런 결과로 2007년 11월 현재 인천교구 꾸르실료는 남성 145차로 7215명, 여성 140차로 7363명, 총 14,578명의 꾸르실리스타를 배출함으로써 (성직자 159명, 수도자 243명 포함) 교구와 각 본당 안에서 복음적인 삶을 성실히 실천하는데 한 몫을 다하고 있다.  < 정리:홍보실  / 참고자료:인천교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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