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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다시보는인천교구

42. 인천교구내 수도회 진출 현황

by 세포네 2007.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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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교구내에 수도회가 들어온 것은 교구가 설정되기 67년 전인 1894년 8월 18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부터 시작되었다.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는 인천본당(현 답동성당)주임 빌렘 신부의 요청으로 최초의 본당인 답동본당의 설립과 거의 동시에 인천 교구에 파견되어 답동본당, 인천교구의 변천과 역사를 같이해왔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는 본원 부지로 1949년 11월 21일 부천시 소사동에 전답, 임야, 적산 가옥을 구입하여 일구고 가꾸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는 방인수녀회로서 답동본당 주임사제이며 박문여자중고등학교의 이사장 대리 임종국 신부의 초청으로 1957년 3월 30일 박문여자중고등학교에 2명의 수녀가 파견되어 봉사하였다. 인보 성체 수녀회는 1958년 경기도 부천군 소사에 본원을 신축하고 백령보육원과 안드레아 병원 사목을 하였다. 남자수도회로서 제일 먼저 진출한 수도회는 1961년 5월 25일 한국 순교 복자 성직수도회이다. 성가소비녀회는 부천에 분원을 신설하고 1962년 5월 1일 소명여자중고등학교에 수녀들을 파견하였다. 한국 순교복자 수녀회는 연백성모원과 성모자애병원의 설립자인 김영식 신부의 초청으로 1963년 4월 9일 황우정 수녀 외 2명의 수녀가 진출하였다.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는 1963년 4월 27일 부평2동본당 주임 페티프렌 신부의 초청으로 전교수녀 2명, 양로원 경영 보좌수녀 1명이 파견되었다. 인천교구에서 유일하게 많은 성장을 한 천주의 섭리 수녀회는 1968년 9월 나길모 주교의 초청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마리아회는 1970년 9월에 들어왔다. 노틀담 수녀회는 1975년 2월 박문여자중고등학교의 인수를 부탁받고, 유일하게 관구본원이 교구 내에 있는 수녀회이다. 같은 해 부천역곡동에 성심여자대학의 분교를 설립함으로써 성심수녀회가 들어왔다. 1976년 6월 15일 가톨릭 출판물의 적극적인 보급을 위해 성바오로 서원을 개설한 성 바오로딸 수녀회가 진출하였고, 같은 해 10월에는 가르멜 남자 수도원이 계산동에 자리하게 되었다. 1977년에는 콘벤뚜알 성 프란치스코회가 갈산동성당의 건축 및 사목을 위임받아 진출하였고, 1981년에는 거룩한 말씀의 회가 이성득 신부의 요청으로 본당사목에 협조하기 시작했다. 1983년에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와 사랑의 선교 수사회, 전교가르멜 수녀회, 1984년에는 마리아 수녀회, 1985년에는 프라도 수녀회, 사랑의 선교 수녀회, 아우구스티노 수도회가 진출하였다. 1986년에는 글라렛 선교 수도회, 1987년에는 도움이신 마리아 수녀회가 들어왔다. 

이처럼 교구설정 전후로 인천교구내에 진출한 25개 수도회는 2007년 현재 남녀 수도회를 합하여 54개로 늘어났다. 여자수도회가 41개, 남자수도회가 13개로 교구 안에 유치원과 학교교육, 사회복지, 본당사목, 피정센터, 병원, 출판물 보급, 관상적소명 등에 봉사함으로써 각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삶으로 구현하고 교구 발전에 밀알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 정리:홍보실  / 참고자료:인천교구사>

 

좌측 위부터 ) 1.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해성보육원생들과 함께
2.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만수동 분원 수사님들
3. 노틀담 수녀회, 종교 교육
4, 성 바오로 딸 수녀회, 출판물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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