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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다시보는인천교구

영적으로 다시 태어날 ‘큰 달걀성당’, 심곡본당

by 세포네 2007.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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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현재의 심곡성당, 
우) 1976년 2월 멀리서 바라본 심곡성당. 150평 단층 건물로 성당 앞은 주로 포도밭이었다.

 

◀ 위) 1975년 5월 성전 기공식 후 첫삽을 뜨는 해리스 신부와 신자들,

◀아래) 심곡성당 머릿돌

 

 

영적으로 다시 태어날 ‘큰 달걀성당’, 심곡본당

부천 전철역, 부천대학의 신관건물을 마주한 큰 길가를 조금 지나 들어서면 큰 달걀 모양의 심곡본당이 눈에 들어온다. 벌집처럼 들어선 주택가와 부천역의 번화함 속에 심곡성당은 도시의 사라져버린 곡선 형태의 건축양식과 영적으로 다시 태어날 큰 알 형상으로 신자들에게는 더욱 의미깊은 성당이다. 

1975년 4월, 주로 포도밭으로 이루어진 붉은 황토밭의 경사진 언덕에 단층의 시멘트 건물로 지어진 심곡본당은 소사본당으로부터 분할되어 1976년 1월 1일 심곡동 본당으로 정식 인가받아 초대 주임으로 해리스 신부가 부임하였고 그후 본당명칭이 심곡2동, 심곡3동, 현재의 심곡본당으로 변경되었다. 신자들은 자기 성화와 교회발전을 목적으로 1976년 ‘도미니끄 성가대’, 8월에는 젊은이들의 참여와 일치를 도모하기 위한 ‘푸른돌 동우회’ 등을 발족하였고 1978년 1월 ‘장미어머니회’가 조직된 것을 시작으로 평신도들의 본당 참여가 더욱 활발해졌다. 

중동지역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상권의 발달로 8대 주임 장희영 시몬 신부는 1983년 현재의 ‘큰 달걀성당’ 건축을 시작하였고 공사 완공 1년을 남겨두고 갑자기 선종하여 동창신부인 박찬용 사도요한 신부가 그 뒤를 이어 새성전 건립을 마무리하였다. 이를 계기로 신자들은 새성전건립을 위해 더큰 관심과 하나된 마음으로 힘을 모았다.

현재 심곡본당은 본당설립 30주년을 맞아 “우리는 기쁘게 만나고 사랑하며 이웃과 함께 하는 정겨운 공동체를 일군다.”라는 구호 아래 사회복지 사업에 역점을 두고, 특히 노인복지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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