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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다시보는인천교구

36.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및 신자 단체의 창립

by 세포네 2007.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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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내에서 평신도의 역할과 사명이 중요하게 부각됨에 따라 평신도들의 교회 참여가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갔다. 이런 추세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자 1979년 3월 18일 인천 교구내 각 본당 평신도 대표 40명이 ‘인천 교구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창립 총회를 열었다. 그리고 6월 24일 첫 행사로 ‘주교 초청 간담회’를 개최하여 평협의 운영 문제를 토의하고, 10월 20일부터 이틀 동안 제1회 인천 교구 평협 연수회를 개최하였다. 이어 11월 17일 가톨릭회관에 평협 사무실을 마련, 체계적인 업무가 시작되었다.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의 결성을 전후로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교구민들의 의식이 고취되고 그 영향으로 많은 사도직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평협의 결성에 앞서 1979년 1월 15일 ‘성모 성심 꾸리아’가 먼저 결성되었고, 같은 해 2월 28일에는 ‘교도 사목 후원회’가 창립되었다. 그리고 평협이 창립된 후 1979년 12월 2일 ‘가톨릭 의사 협의회’가 발족되어 가톨릭 의료인으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수행할 것을 다짐하였다. 특별히 여성의 자질 향상과 참다운 성가정을 실현하기 위해 ‘여성 연합회’가 조직되었으며, 1980년 3월 26일 복음 정신에 입각한 간호인상의 구현을 목적으로 ‘가톨릭 간호원회’도 발족되었다. 

이처럼 평협의 결성을 비롯하여 새로운 평신도 단체들이 교구 안에 조직되어 활동을 시작함과 더불어 기존의 평신도 단체들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79년 3월 12일부터 5일 동안 명도회 교리교사 연합회는 교리교사들의 자질 향상을 위해 연수 교육을 실시하였고, 6월 17일에는 대건 중고등학교에서 명도회 중학생을 대상으로 새로운 방법의 성경 연구 발표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이 있었다.

한편 본당 단위의 평신도 단체로 답동본당의 조기회가 1979년 8월 15일에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답동본당의 조기회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모임이어서 매일 아침미사 참여 유도에 큰 몫을 차지했기 때문에 답동본당의 평일미사 참여자수는 평균 200여명에 달했다. 1979년 10월 14일에는 어머니들의 교회 내 전교활동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성가의 폭넓은 보급을 위한 ‘제1회 교구장배 어머니 합창단 합창 경연 대회’가 답동성당에서 처음으로 거행되었는데, 7개 본당에서 150여명이 참가하였고 합창 부문 최우수상은 용현본당이 차지했다. 교구자립과 함께 1978년 인천교구 사목지침인 청소년 교리교육과 예비자교리, 신자재교육 등의 일환으로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및 새로운 평신도 단체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계속되었다. < 정리:홍보실  / 참고자료:인천교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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