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과 교리]/다시보는인천교구

32. 인천교구 설정 후 본당 증설과 수도회 진출

by 세포네 2007. 9. 2.
728x90

1962년은 한국 천주교회 교구 발전사에 있어 획기적인 해였다. 한국교회에 교계제도가 도입됨으로써 그 때까지의 모든 포교지 교구가 정식 교구로 승격되었기 때문이다. 그 해 3월 10일 인천교구도 대목구에서 교구로 설정되어 많은 본당과 공소가 증설되기 시작했다.

1962년 9월 18일 화수동본당, 1963년 8월 15일 주안본당(현 주안1동 본당)과 독쟁이(용현동)본당이 설립되었고 오류공소가 같은 해에 설정되었다.

이어 1964년 초 그동안 초가를 개조하여 공소로 사용하던 중 격증하는 교세로 난관에 이르렀던 김포본당 마송공소가 본당신부와 해병여단 군종신부의 주선과 지원을 받아 신축 공소의 기지를 마련하였고, 1964년 1월 용현동본당 송도공소, 7월 14일 부평1동본당이 설정되었다. 1965년 9월 28일 주안본당에서 분리된 고잔본당, 4월 마송본당(현 통진본당, 초대주임 블러리스 신부)과 영종본당(초대주임 시노트 신부), 1966년 3월 5일 김포본당 오류리공소가 축성되었으며 4월 13일 덕적본당이 설정되었다.

그리고 1966년 12월 6일에는 화수동 성당이 낙성되었다. 교구에서는 1964년, 1966년의 병인박해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화수동에 기념 성당을 건립하기로 하고, 2,000만원의 예산으로 1965년 5월 5일 건립을 시작하여 1966년 11월 완공하였다. 특별히 화수동 성당완공에 있어서는 교황청 보조 25,000달러, 미국 교우들의 모금 40,000달러, 그리고 인천교구 신자들이 200만원을 모금하는 등 외부의 지원이 컸다.

대목구 승격 후부터 교구가 설정되면서 많은 수도회가 교구에 진출하였는데, 가장 먼저 진출한 수도회가 인보성체회로서 1961년 7월에 무의촌 진료를 시작하였고, 1962년 4월에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가 육아시설인 ‘도화동 보육원’을 인수하였으며, 1963년 3월에는 예수 성심 수녀회가 부평2동본당에 분원을 개설하였다. 이어 1963년 3월 25일 메리놀 수녀회에서 ‘그리스도왕 의원’을 개원하였으며, 4월 3일 한국순교복자 수녀회가 ‘부평성모자애병원’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1963년 9월에는 예수성심수녀회가 연평본당분원을 개설하였으며, 12월 25일에는 성가소비녀회가 천주교 양로원을 축성했다. 1964년 9월 부평1동 본당에 예수 성심 수녀회가 진출했고, 1966년 9월에는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김포분원이 설정되었다. 그리고 1967년 7월 4일에 ‘인천교구수녀연합회’가 결성되었다. 

교구설정 후 많은 본당이 증설되어 현재 인천교구에는 104개 본당이 있으며 인천교구에 진출한 선교회 및 수도회가 약 60여개로 교구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정리:홍보실  / 참고자료:인천교구사>

 

 좌측 위) 1964년 주안1동 성당 영세사진 / 우) 용현본당 구 성전 전경
아래) 1966년 고잔성당 낙성식 / 우) 오류리, 금속공소 공동야외미사(1966-67년경)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