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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다시보는인천교구

24. 지역 주민을 위한 의료봉사에서 출발한 부평 성모자애병원

by 세포네 2007. 7. 1.
 

24. 지역 주민을 위한 의료봉사에서 출발한 부평 성모자애병원 

1952년 인천의 두 번째 본당으로 설립된 부평본당과 함께 1955년 설립된 부평성모자애병원은 전쟁의 상처로 치유의 손길이 절실히 요구되던 당시, 고아들과 지역주민들을 위한 의료활동으로 부평지역 발전과 교세확장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부평본당 초대주임신부이자 성모자애병원 초대 병원장이였던 김영식(베드로) 신부는 일제 시대에 황해도 연안에 ‘연백 성모원’을 설립하여 무의 무탁한 고아들을 보살피다가 한국 전쟁으로 이를 중단하고 월남하였다. 1953년 5월 미8군의 원조를 받아 지금의 성모자애병원 자리에 목조 건물 75평을 건립, 보육원 ‘연백 성모원’을 재개원하고 전쟁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6월 17일 인천주보 4면 참조) 그 후 고아들은 물론 주민들에게도 절실히 필요했던 병원을 개설하기로 결심하고 미8군 제121 육군 병원과 제6의료 보급창의 지원을 받아 119평의 2층 목조 건물을 신축하였다. 그리고 1955년 6월 27일 내과, 외과, 방사선과 등 3개과에 의사 2명, 간호사 2명 등 10명의 인원과 41개 병상을 개원하였다.

그리하여 병원과 연백 성모원을 동시 운영하며 원아 복지 사업과 국민 보건 향상에 전력하였다. 1958년부터 1962년까지 미8군 제121육군 병원과 대한원조처(AFAK)로부터 대량의 의료 기구를 원조받아 소아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병리실험실 및 혈액 은행 등을 설치하고 1962년 1월 9일 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11평의 입원실과 최신식 자동분만대를 설치하여 병원 규모를 확장하였으며 1962년 4월 7일자로 가톨릭 의과 대학 부속 병원으로 제4약정, 부속 병원으로 편입되어 종합병원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63년 1월 7일 창설자이자 초대 병원장인 김영식 신부의 선종으로 천주교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에서 경영을 맡게 되었고 의과 대학에서는 의사만 파견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운용 체제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렇듯 발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개원 초기부터 그리스도 정신에 입각한 따뜻한 진료와 무의 무탁한 환자들에 대한 무료 진료 및 무의촌 이동 진료 등으로 가톨릭 의료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이어서 시설 장비의 확장과 추세에 적응할 수 있는 의료 기관으로서의 발전 계획을 추진하였다.

현재 부평 성모자애병원은 2005년 10월부터 재단법인 천주교 인천교구로 병원 경영권이 이양되었고, 국내최초 방사선 암치료기 ‘토모테라피’와 초음파 암치료기 ‘하이프나이프’을 도입하여 최신 의료설비를 갖추었다. 또한 그리스도 정신에 입각한 의료 진료를 펼쳐 지역 사회의 중추적인 가톨릭 의료기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리:홍보실, 참고자료:인천교구사, 성모자애병원 40년사>

 

 

 

 

 

 

 

 

 

 

 

 

사진: 왼쪽 위부터 좌우방향)
1. 전쟁 고아들의 집 연백 성모원
2. 김영식 신부(앞줄 오른쪽 두번째)와 의료진 및 직원들
3. 1955년 5월 개원을 앞둔 성모자애병원의 신축 건물
4. 초창기 성모자애병원 수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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