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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다시보는인천교구

21. 한국 최초의 사회사업 전문학교, 구산후생학교

by 세포네 2007. 6. 10.

1950년대에 들어서자 학리(學理) 탐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많은 학교들이 있었지만 당시 무엇보다 필요했던 전쟁 후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고 사회사업을 펼치는 등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학문을 교육하는 곳이 없었다.

 

 

윤을수 신부(왼쪽 사진)는 1956년 8월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세계 사회 사업가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다가 서구의 사회 사업 구조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 사업이 보육원이나 양로원과 같은 소규모적인 것에서 벗어나 광범위한 사회 사업, 즉 지역 사회 개발면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이에 우리 나라에도 그러한 사회 사업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끼고, 지역사회를 위한 사회사업가 양성을 목적으로 1956년 9월 1일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벌응절리 산 4번지에 ‘구산 후생학교’와 ‘인보성체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구산 후생학교는 2년제 여자 초급 대학에 준하는 학교로서1956년 11월 19일 개교하였다. 만 17세 이상 25세 미만으로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자격을 갖춘, 교구장이나 수도원장의 추천을 받은 여자만이 입학할 수 있었다. 윤을수 신부는 보다 지속적, 효율적 복음선포와 사회사업의 전개를 위하여 학교 내에 ‘수도반’을 신설하였다. 

입학 후 ‘수도반’과 ‘사회반’으로 분리되었지만 일단 구산후생학교에 입학하면 기숙사에 합숙하고 수도생활에 준하는 생활을 해야했다. 19개 과목이 대부분 종교과목(성서, 교회사, 교회 윤리, 성사, 라틴어, 종교 음악)이었는데 학리 탐구보다는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였다.

학생들은 실습 기간 동안 각 지역에 파견되어 의료반과 함께 무의촌 방문, 가정조사 및 구호, 개간 및 간척 사업을 돕는 일을 하였으며, 도서 지방을 순회하며 위로와 협조의 마음으로 전교하였다. 이것은 종전의 사회 사업과는 달리 각 지역의 고유한 특색을 따라 지도자로서가 아니라 협조자로서 일하며 그 지역의 향상을 위해 헌신하자는 뜻이었다.

한국에 하나뿐이었던 사회사업 전문학교 구산후생학교는 1964년 6월, 7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경영난에 부딪쳐 문을 닫았다. 그러나 졸업생들은 사회로 진출하여 전교회장, 고아원이나 유아원, 주일학교, 각 분야의 사회사업에 뛰어들어 활약하며 짧은 역사의 구산 후생 학교의 존재를 높이 평가하게 했다.

 

1964.4 연평도에 방문한 나 주교님과 신자들. 그 당시에 연평도 병원에는 인보성체수녀회에서 파견된 수녀님이 계셨다.

 


한편 학교와 함께 설립된 인보성체수도회는 1960년 10월 1일 서울교구 정식 수도회로 인가되었고, 여러 천주교 사회사업체와 긴밀한 연관을 맺으며 활동을 시작했다. 구산후생학교는 폐교되었지만 인보성체수도회 수녀들은 사회사업에 종사함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설립자 윤을수 신부의 뜻을 이어갔다.

현재 인보성체수도회는 회원 400여명이 사회복지 분야와 본당에서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페루와 일본 등지에도 수녀들을 파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9일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정리:홍보실 / 참고자료:인천교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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