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 송도의 신앙공동체
조선교회 초기 송도지역 함박리(1914년 부천군, 1940년 인천부로 편입, 1977년 연수동으로 됨)에서 많은 순교자가 나왔으며 송도 점말(조개고개)의 옹기를 굽던 흔적으로 보아 옛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송도지역에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 옥련동)
전 송도공소 회장이었던 나금옥(베네딕도)의 조부가 1907년 대원군 시대 박해를 피해 고향 나주에서 피난길에 올라 이곳 점말에 정착하며 이 지역 신앙의 싹이 되었고 박동철(베드로) 등 공소 지도자들의 아낌없는 노력으로 송도지역의 신앙공동체가 시작되었다.
1960년대 이전 청학, 연수 지역은 도시 변두리 어촌이면서 농촌지역이었기 때문에 이곳 신자수는 구교집안 출신을 포함해서 15-20세대에 불과했으나 신자들의 열심한 전교활동으로 신자수가 계속 증가하였다. 1960년대 들어 인천교구가 설정된 후 메리놀회에서 가난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밀가루 등을 나누어 주며 전교하여 이때 많은 주민들이 입교하였고 1964년 1월 송도공소가 설정되었다.
송도 지역에 공소가 생긴다는 기쁨으로 신자들은 모두 건설공사에 협력하였고 동막 해안에서 모래를 채취, 운반해 오고 경비절감을 위해 스스로 기초공사를 하는 등 합심하여 노력하였다. 그 결과 1966년 6월 17일 조촐하면서 아름다운 공소 건물이 완공되어 ‘성신성당’으로 봉헌되었다.
신자수와 살림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신자들의 정성어린 땀과 기도 덕분에 송도 공소 공동체는 나날이 활성화되었고 드디어 1981년 2월 3일, 옛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정착하게 된 송도에 옥련동 본당이 설정되었다.
'[가톨릭과 교리] > 다시보는인천교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자들의 힘을 모아 이룩한 장정리 공소(하점 본당) (0) | 2007.06.17 |
---|---|
22. 인천에서 두번째로 설립된 부평본당(현 부평2동) (0) | 2007.06.17 |
21. 한국 최초의 사회사업 전문학교, 구산후생학교 (0) | 2007.06.10 |
순교터에 피어난 신앙, 강화 성당 (0) | 2007.06.03 |
20. 한국학생들을 위해 설립된 여학교, 박문여자중고등학교 (0) | 2007.06.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