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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다시보는인천교구

12. 인천박문초등학교의 초기 모습

by 세포네 2007. 4. 1.

12. 인천박문초등학교의 초기 모습

1905년 이르렀다.
지난주 주보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00년 9월 1일 김교원과 강준에 의해 설립된 인천항 사립박문학교가 훗날 박문초등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1909년 12월 8일  답동본당이 이를 인수하여 본당 주임 드뇌신부가 설립자 겸 학교장이 되어 신자자녀 및 불우한 아동의 교육을 시작하였다. 이것이 박문학교 남자부의 시작이다.

한편 1912년 6월 26일 프랑스인 소루엠마엘 수녀가 인천 사립 박문학교 여자부를 시작하였다.(1899년 설립된 여자기술학교가 박문학교 여자부로 이어졌다. 지난주 주보 참조). 이들 가톨릭학교에서는 매일 한 시간씩 종교 시간이 있어 교리문답과 기타 종교 서적을 가르쳤으며 많은 학생들이 세례를 받았다. 1916년 7월에는 수녀들이 교육을 담당하고 있던 박문학교의 여자부가 인천에서 가장 좋은 학교라는 평을 받았다. 인천시장 대리가 상품 수여식날 이것을 증명해 주었다. 

1917년 4월 2일 드뇌 신부는 남자부와 여자부를 합하여 ‘인천 박문 사립 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설립자 겸 초대 학교장으로 취임했다. 1925년 11월 17일 ‘인천 사립 박문 보통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교회 학교는 많은 외교인 학생들을 입교시키고 그 학생들의 가족을 입교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특히 외국인 선교사에게 있어 교회 학교는 한국인과 접촉하고 교리를 가르치는데 있어 가장 용이하고 적절한 장소였다. 그러므로 교육사업은 당시 선교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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