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인천 답동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첫 분원 설립
1893년 인천항에 장티푸스가 발병하여 많은 사람들이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서 마라발 신부(당시 답동 주임)는 본당 내 헛간을 마련하고 환자들을 거두어 보살피고, 대세도 주었다. 서 마라발 신부와 당시 인천에 부임해 있던 홍 요셉 신부는 함께 일할 수녀들이 있다면 보다 많은 영혼을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여 뮈텔주교에게 수녀원 설립의 필요성을 보고하였다.
당시 한국에 진출해 있던 유일한 수도회인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본부에서는 한국의 요청을 들어주어, 서 요셉 신부는 답동에 마련한 부지 중 한 부분에 수녀원 공사를 시작했다. 1894년 8월 인천수녀원 공사가 완공되었고 8월 18일 2명의 수녀가 인천에 도착했다. 당시 상황이 위험하여 블란서 공사의 청원으로 영국군이 호위하여 수녀들은 오후 5시에 인천항에 도착, 수녀원으로 이동했다. 이것이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한 지 6년만에 첫 분원이 탄생한 일이었다.
제물포 수녀원이 시작되던 1894년 여름부터 병자들이 오기 시작했는데, 마리 클레망스 원장수녀는 베트남 통킹의 서양 군인 병원에서 여러해 동안 사도직을 수행한 일이 있어 병자 간호를 잘 하였다. 날마다 병자들이 십 여 명씩 와서 부스럼 종류의 병을 치료받았고, 약도 사갔다. 어떤 때는 수녀들이 가정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해주고 죽어가는 사람을 위로했다. 이렇게 인천에서 수녀들의 사도직 활동이 시작되었다.
한편 답동본당은 수녀원 건립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자 성당 건립을 시작했다. 1895년 8월 15일에 정초식을 거행하고, 1897년 7월에는 종탑을 완공하고, 10월 벽돌일도 마무리하여 1897년 7월 4일 뮈텔주교에 의해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종탑 위의 작지만 우아한 뾰족탑은 인천 시내 어느 곳에서나 바라 볼 수 있는 교회의 상징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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