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 성당 성녀 김성임 마르타
계산동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성녀 김성임 마르타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계산동 성당은 한국 103위 순교성인 중 한 분인 김성임 마르타와 관련이 깊다. 김성임 마르타는 부평 출신으로, 성녀가 살아 있을 당시 계산동 성당 부근에 부평도호부가 있었으며, 성녀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김성임 마르타는 늦게 천주교를 알게 되었으나 인내와 극기의 생활을 하며 믿음을 키워나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김성임 마르타는 순교를 결심하고 포졸들에게 묵주를 보여주며 자수하였다. 포장이 김성임 마르타에게 “천주교를 아느냐”고 물었을 때 성녀는 “참으로 나는 하느님을 알고 있으며, 죽을지언정 천주를 배반하지 못하고, 천주십계에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사람을 상하게 할 말을 못한다”라고 대답하며 끝내 모진 고문을 버텼다. 5차례의 주뢰형을 받아 팔다리를 쓰지 못했으나 그 고통을 모두 견뎌냈으며 고통 중에도 성녀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결국 옥에 갇힌 지 3개월만인 7월 20일, 53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7명의 교우와 함께 순교하여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었다. 성녀 김성임 마르타는 1925년 시복, 1984년 시성되었다.
한국천주교 200주년을 맞아 103위 시성식을 준비하면서 1983년 1월 28일부터 전국적으로 순교자유해 본당순회기도를 할때 계산동 성당에서는 9월 3~8일에 기도회를 하였으며, 김성임 마르타의 순교자적 삶을 본받고자 1995년부터 성녀가 순교한 7월 혹은 순교자 성월인 9월에 기념미사를 드리고 있다.
또한 계산동 성당에는 박송우 임마누엘 작품인 성녀 초상화 외에도 옛 제구들(성합과 성작, 향합, 수반 등)이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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