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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교리]/다시보는인천교구

해안성당의 전신인 선린화교성당

by 세포네 2007. 2. 17.

사진) 위. 선린 화교 성당의 옛 한문 교적(좌측), 라틴어 교적(우측)
아래. 1. 교육관 내부의 오래된 바닥, 2. 해안성당 종탑, 3. 교육관 외부 모습

 

해안성당의 전신인 선린화교성당
해안성당의 옛 이름은 ‘선린화교성당’으로 북성동 3가 10번지 개신교회 옆 낡은 주택 이층방에서 시작되었다.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일본조계를 시작으로 1884년 청국지계(선린동 일대 5,000평, 일정한 범위 안에 외국인 전용 거주지역으로 그곳의 지방행정권을 그들 외국인에게 위임한 지역)가 형성되었다. 1958년 당시 답동성당에 다니던 중국 신자들은 언어소통의 불편함과 민족 이질감을 느껴 화교성당이 절실히 필요했다. 따라서 인천시 중구 북성동 3가 10번지 소재 개신교회 옆 이층방에서 중국 신자들의 전례 모임이 시작되었고, 1960년 7월 17일 답동성당과 화수동성당에서 분가하여 ‘선린화교성당’이 설립되었다. 북성동에 소재했지만 화교들이 모여 살았던 선린동의 이름을 따라 ‘선린화교성당’이라 하였고 교적도 한문과 라틴어 두권으로 기록하였다. 

현재 성당은 1962년 12월 31일 인천시 중구 선린동 26-1번지 소재 건물을 구입하여 1966년 6월 9일 완공한 것이며 종탑과 성당 건물 모두 완공 당시 그대로이다. 이후 1972년 11월 12일 ‘해안성당’으로 개칭되었다. 

해안성당 앞의 교육관은 1939년 청국지계 내에 세워진 중국인 주택으로 1995년 화교에게 구입하여 교육관으로 개조한 후 사용하고 있다. 이 교육관은 현존하는 중국인 사합원(四合院 :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형 주택) 중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양호한 건물로 내부 상태나 각 부위의 세부 모습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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