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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가보고싶은 공소50

14. 수원교구 향남본당 용소리공소 유서 깊은 양간 교우촌 신앙 전통 계승 수원교구 향남본당 용소리공소는 1820년께부터 형성된 유서깊은 남양도호부 양간 교우촌에 설립된 공소이다. 용소리공소 전경. 용소리공소는 한 때 교우 수가 200여 명이나 되는 공소였다. 용소리공소 내부 용소리공소 내부에 마련돼 있는 고해실. 오늘날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은 조선 시대 남양도호부에 속한 지역이다. 남양도호부는 경기 화성시의 남양읍, 마도면, 송산면, 서신면, 비봉면, 장안면, 우정읍, 팔탄면 일부, 향남읍 일부, 양감면 일부 지역과 인천 옹진군 덕적면, 자월면, 영흥면 지역,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 지역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간면과 감미면이 병합돼 ‘양감면’이 됐다. 양감면은 고도 100m 이하의 구릉과 평야 .. 2023. 4. 23.
13. 춘천교구 화천본당 사창리공소 35년 부침 거듭하다 공소 다시 열고 ‘부활’ 화천본당 사창리공소는 1962년 9월에 설립됐다. 춘천교구 공소 살리기 운동으로 재활성화되어 2015년 화천본당 5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지금의 공소를 건립했다. 화천본당 사창리공소 전경. 화천본당 사창리공소는 평신도 김혜숙 평신도 선교사가 1999년 활동한 이후부터 매해 사순 시기마다 매일 순번을 정해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것을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다. 사진은 사창리공소 교우들이 사순 시기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 강원도 화천군은 화천읍, 간동ㆍ사내ㆍ상서ㆍ하남면 등 5개 읍면으로 이뤄져 있다. 춘천교구 화천본당 사창리공소는 사내면 창안산길 8-13에 자리하고 있다. 춘천 지역 본당의 모태는 1898년에 설립된 풍수원본당이다. 풍수원본당.. 2023. 4. 9.
12. 춘천교구 화천본당 오음리공소 1888년 복음 전파… 1963년 공소 설립 화천본당 오음리공소는 1963년 설립됐다. 코로나 대유행 이전까지는 공소 교우 40여명과 지역내 군인 20여 명이 매 주일 미사에 참례할 만큼 활기를 띠었다. 오음리공소 전경. 강원도 북서부 북한강 상류에 자리한 화천군은 동쪽으로는 양구군, 서로는 철원군과 경기도 포천시, 남으로 춘천시, 북으로 철원군과 접하고 있다. 이 지방은 대부분 산지이다. 금강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나온 광주산맥이 화천군을 지나면서 대성산, 백산, 백암산, 재안산, 사명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열 개나 된다. 화천군은 산이 깊고 물이 많은 지방이라 선사시대 때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농경, 어로, 수렵을 하며 살았다. 오음리공소 인근 간동면 유촌리에는 선사시대 고인돌 유적이 남아 .. 2023. 4. 2.
11. 춘천교구 곰실공소 춘천교구의 모태가 된 유서 깊은 공소 곰실공소는 춘천교구 발상지이며 효시인 유서깊은 신앙 공동체이다. 곰실공소 전경. 한국 가톨릭교회가 세계 교회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우리 선조들이 외국인 선교사들의 전교 없이 자발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신앙 공동체를 설립한 것이다. 이 아름다운 교회 전통을 그대로 답습 유지한 지역 교회가 바로 춘천교구다. 고향으로 돌아 온 천주학쟁이 19세기 말 춘천시 동면 장학리 노루목에서 한학에 열심했던 한 젊은이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자기 집에 세 들어 살던 체반 장수의 권유로 가톨릭교회 교리서인 「천주실의」와 「주교요지」를 읽고 곧바로 회심하여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는 가톨릭 교리를 제대로 배우고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큰 형과 함께 천진암 인근에 움막을.. 2023. 3. 26.
10. 춘천교구 샘밭본당 발산공소 1866년 병인박해 피해 숨어든 ‘옹기점말’ 춘천교구 샘밭본당 발산공소는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이곳에 숨어들어온 신자들이 옹기를 굽고 교우촌을 이루며 생활하면서 시작됐다. 발산공소 전경. 발산공소는 고조선에서 떨어져 나와 건국한 맥국의 왕궁이 있던 바리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제대와 독경대, 십자가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는 발산공소 제단. 발산공소 신자들은 성직자를 2명이나 배출할 만큼 열성적이다. 공소 입구에 둔 전례복들과 기도서, 지난해 부활초가 정겹다. 춘천이 맥국의 중심지였음은 이름에서 알 수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와 삼국유사는 춘천을 ‘우수주(牛首州)’, ‘우두주(牛頭州)’, ‘삭주(朔州)’, ‘춘주(春州)’라 한다. 한자음 우수주, 우두주는 우리말로 ‘소머리 고을’이다. 소머리는 쇠머리,.. 2023. 3. 19.
(9) 춘천교구 강촌본당 광판공소 공소 신축 꿈꾸지만 맹지로 묶여 애태워 . 춘천교구 강촌본당 사목구 내에 3개 공소가 있다. 후동ㆍ추곡ㆍ광판공소이다. 강촌본당과 관할 3개 공소는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동본당 공소로 신앙 공동체를 시작했다. 강촌과 후동은 1958년, 추곡은 1960년에 공소가 설립됐다. 광판공소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강촌ㆍ후동공소와 함께 1958년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춘천 남쪽 바깥에 자리한 강촌본당과 세 공소 지역에 본격적으로 선교가 이뤄진 때는 1956년께이다. 6ㆍ25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구호물품을 지원하는 교회 활동으로 시작됐다. 춘천교구 강촌본당 광판공소는 토박이 신자와 귀촌 신자들이 조화를 이루어 가꾸고 있는 활기찬 공소이다. 서울대교구 신내동본당 신자들의 도움으로 .. 2023. 3. 12.
(8) 춘천교구 스무숲본당 실레마을공소 아름다운 성미술로 꾸며진 소박한 공소 ▲ 춘천교구 스무숲본당 실레마을공소는 고 장익 주교의 관심으로 다시 고쳐져 아름다운 외경과 소성당을 갖춘 공소가 되었다. ▲ 실레마을공소 내부. 바닥은 안정감을 주는 원목으로 꾸며져 있고, 제대와 감실, 독경대, 십자가는 김겸순 수녀의 작품이다. ▲ 제단 중앙에 설치된 이콘 십자가. 김형주 화백의 작품이다. ▲ 한복을 입은 성모자화. 김형주 화백의 작품이다. 춘천교구 스무숲본당 실레마을공소는 46번 국도를 타고 강촌에서 춘천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금병의숙길 10 현지에 자리한 실레마을공소의 옛 이름은 신남공소이다. 동네 지형에서 따온 마을 이름 조선 시대 춘천의 남쪽을 ‘남부내면(南府內面)’이라 불렀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신남면’으로 .. 2023. 2. 26.
(7) 춘천교구 포천본당 신평공소 한센병 환우들이 40여 년 지켜온 신앙의 터전 ▲ 포천본당 신평공소는 1974년 한센병 환우들이 정착해 설립한 공소이다. 현 공소는 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해 새로 옮겨 2015년 봉헌했다. 한국 교회 신앙의 요람지 경기도 포천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이 선포되고 가톨릭 신앙의 씨앗이 뿌리내린 것은 한국 교회 창립 시기와 함께한다. 경기도는 한국 교회 창립 초기부터 신앙의 중심지였다. 서울이 가톨릭 신앙 공동체가 처음으로 형성된 곳이라면 경기도는 가톨릭 신앙을 충청도와 전라도로 전파한 신앙의 요람지이다.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체포된 가톨릭 신자 692명 가운데 88%가 서울ㆍ경기ㆍ충청 지역에 살고 있었다. 교회 창립 초기 포천 지역에 살았던 대표적인 신자는 신유박해 순교자인 복자 홍교만(프란치스코.. 2023. 2. 19.
(6) 춘천교구 운천본당 관인·양문공소 전교회장의 두터운 신심 위에 성장한 두 공소 ▲ 운천본당 관인공소는 1950년대 중반에 설립된 공소이다. 현재 인보성체수도회 수도자들이 파견돼 있다. 관인공소 전경 ▲ 양문공소 신자들. 젊은 시절에는 성체를 모시기 위해 운천성당까지 걸어서 미사에 참여할 만큼 열심이었다고 자랑한다. 포천(抱川)이란 지명은 1413년 조선 태종 13년에 생겨난 이름이다. 삼국 시대 고구려와 백제의 땅이었을 때 포천은 ‘들’로 불렸다. 물이 많은 골이라는 뜻이다. 신라 진흥왕 때에는 이곳에 굳건한 성을 세워 군사 요충지로 만들었다 해서 ‘견성’(堅城)이라 불렀다. 고려 때에는 ‘포주’라 불리다 물이 들어오는 것은 없고 밖으로 흘러나가기만 한다 하여 ‘안을 포(抱)’ ‘내 천(川)’ 자를 써서 조선 초부터 ‘포천’이라 불렀다... 2023. 2. 12.
(5) 인천교구 온수본당 오두리·고능리공소 ▲ 인천교구 온수본당 오두리공소와 고능리공소(사진)는 메리놀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강화도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반에 설립한 공소이다. ▲ 오두리공소. 부처님의 은혜를 입은 땅 이번 호에는 인천교구 온수본당 관할 강화군 불은면에 있는 오두리ㆍ고능리공소 두 곳을 소개한다. 강화군 불은면에는 고려 시대에 지은 자은사(慈恩寺)라는 큰 절이 있었다. 이 절이 융성하자 사람들은 그 일대를 부처님의 은혜를 입은 땅이라 해서 ‘불은’(佛恩)이라 불렀다. 불은면에는 강화의 해안을 경계하던 조선 시대 12진보 가운데 광성보와 덕진진이 있다. 1658년 효종 9년 때 설치된 광성보는 1745년 영조 21년에 다시 고쳐 지어 성문을 만들고 안해루(按海樓)라 했다. 광성보는 1871년에 발생.. 2023. 2. 5.
(4) 인천교구 온수본당 초지공소 병인·신미양요의 상흔 어린 초지, 한옥 공소의 정겨움 뽐내 ▲ 초지공소는 근현대 한옥 성당의 내부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노출되어 있는 나무 보와 기둥이 정겹다. 병인박해와 프랑스의 보복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은 처음부터 박해자가 아니었다. 둘째 아들 이명복이 1863년 조선 제26대 고종 임금으로 즉위하자, 그의 부인 여흥 민씨가 운현궁 안채 이로당에서 감사 미사를 봉헌했다.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정권 실세가 된 대원군은 많은 개혁을 단행했다. 당파 싸움의 온상이었던 서원을 철폐하고, 명나라 신종 황제의 사당인 만동묘를 폐쇄했다. 또 양반에게도 세금을 거두고, 군 지휘권을 무관에게 돌려줬다. 대원군은 조선을 넘보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과 접촉하기도 했다. 그는.. 2023. 1. 22.
(3) 인천교구 강화본당 냉정리공소 조선 왕족의 첫 순교자 나온 강화에서 움튼 신앙, 65년 굳건히 ▲ 냉정리공소 신자들이 채석장에서 주운 돌로 손수 지은 성모 동굴과 잘가꾼 해송으로 꾸민 성모 동산이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기도하게 한다.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 아래에 있는 아름다운 섬 ‘강화(江華)’. 강화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이 섬이 ‘강화’로 처음 불린 것은 940년 고려 시대 태조 23년 때이다. 이전에는 ‘해구’(海口), ‘혈구’(穴口)라 했다. 강화는 개성과 한양 인근에 있는 큰 섬이어서 고려와 조선의 많은 왕족이 이곳으로 유배 왔다. 강화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대표적인 인물이 연산군과 영창대군이다. 강화는 또 한국 가톨릭교회와 깊은 연을 맺고 있다. 이 인연은 조선 제25대 임금인 철종의 할아버지 은언.. 2023.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