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와 영성]/한국교회사80장면

(12) 1960년대 한국교회 교계체제 확립

by 세포네 2006. 8. 13.

 

“서울 광주대구 자치권 갖는 대주교구로”

“大主敎三位任命 - 自治敎區 및 敎權上의 完全한 體制
- 韓國 敎會史에 新紀元을 劃定
- 노기남 大主敎 서정길 大主敎 현헨리 大主敎
- 三大主敎區로 鼎立

교황 성하께서는 한국에 三대주교구(大主敎區)를 승격발령함으로 전국 각 대목교구(代牧敎區)는 각 대주교구에 소속되는 자치의 완전한 교구로 승격시키는 동시에 서울 대구 광주 등 三대주교구의 각 소속교구를 결정하였다.

즉 서울대주교구에는 평양교구 함흥교구 춘천교구 대전교구 및 인천교구가 소속되고 대구대주교구에는 청주교구와 부산교구가 소속되며 광주대주교구는 전주교구를 각각 속(屬) 교구로 하여 三대주교구의 정립(鼎立)을 실현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바오로 노 대주교, 요안 서 대주교, 그리고 하롤드·헨리 현 대주교의 승진을 보게 된 것이다.

바티칸 성청 발령에 의하여 대주교구로 승격되는 서울, 대구 및 광주의 대주교구는 교회법이 규정하는 완전한 수부(首府 METROPOLITAN)가 되며 승진되는 대주교 또한 교권(敎權)상의 완전한 권한을 관장하게 되는 것이다.

소속 교구가 되는 각속교구(各屬敎區 SUFFRACAN)는 각 대주교구의 관하에 들어서는 동시에 대목교구에서 완전한 자치교구(自治敎區)로 승격하여 속교구의 주교들은 대목(代牧) 주교에서 본교구 주교로 승진하게 된다.“(가톨릭시보 1962년 4월 1일자 1면 기사 중에서)

변화의 급물살 타는 한국교계

1962년 3월 10일은 한국 교회의 역사 안에서 그야말로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갖는 날이다. 교황 요한 23세는 한국교회의 자립 능력을 인정하고 정식 교계 제도를 설정했다. 한국교회는 완전한 재치권(裁治權)을 행사하는 교회가 됐고 동시에 서울, 대구, 광주 등의 대목구가 대교구가 되는 동시에 이들을 중심으로 3개의 관구가 설정됐다. 이로써 당시까지 대목구였던 13개 교구는 정식으로 교구로 승격됐다.

한편 교계 제도 설정 이후인 1963년 10월에 수원교구가 서울대교구에서 분리됐고, 1965년 3월에는 춘천교구에서 원주교구가, 1966년 2월에는 부산교구에서 마산교구가, 1969년 5월에는 대구대교구에서 안동교구가 분리, 설정됐다.

가톨릭시보 1962년 4월 1일자에는 1면 전체를 할애해 한국교회에 정식 교계 체제가 확립된 이 소식을 감격어린 어조로 대서특필하고 있다. 특히 가톨릭시보는 3명의 대주교를 중심으로 한 한국교회의 반응과 뜨거운 감격을 전하고 있다.

노기남 대주교는 가톨릭시보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 개인의 영광보다도 한국교회 전체의 영광을 우선 기뻐하여 마지않는다”며 “전교지방을 벗어나 교직체계로 승격되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이후의 한국교회가 질머질 중대한 책임일 것인줄로 안다”고 말했다.

가톨릭시보는 감격적인 이 순간을 맞아 사설을 통해 이러한 감격을 함께 기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더 침착한 태도를 요청하면서 “우리는 그 의의(意義)를 단지 홍은(鴻恩)에 접한 감격에서 보다는 현재의 위치와 또 장래를 관망하면서 침착한 태도로 새겨볼만하다”고 강조했다.

가톨릭시보는 또 ‘反射鏡’이라는 코너를 통해 교구의 자치권의 실현은 각 본당과 단체들의 자치 노력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오늘의 영광을 우리는 제본당의, 그리고 교회 각종 기관의 자치에서부터 탄탄하게 쌓아올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특히 “본당의 자치를 선행시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