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성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와 일치 향해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324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 목요일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과 사제에 의해 축성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이 성사에 실제로 현존하는 것을 기념해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지내고 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통상적으로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목요일에 지내지만 복음화 지역인 한국에서는 신자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 차원에서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주일에 지내고 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맞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해 가난한 이들을 위해 투신하는 제2의 그리스도가 될 수 있길 희망하며, 성체성사의 의미를 묵상할 수 있는 성화를 소개한다.
<사진 자료 제공 = 한국교회사연구소>
성찬례는 예수께서 제정하신 그대로 제자들이 거행했다. 그 증거는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 생생히 기록돼 있다.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코린 11,23-26).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명령에 따라 사도시대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모든 세기에 걸쳐 미사를 봉헌해 왔다.
성체성사가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인 것은 예수께서 직접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 55-56)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같은 말씀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축성된 빵과 포도주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믿음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12세기에 들어 신학자들 사이에서 성체 안에 그리스도가 실제 현존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다. 하지만 성체성사에 대한 이같은 의심과 논쟁이 커질수록 신자들 사이에서는 성체성사에 대한 신심이 더욱 고조됐고, 성체성사의 기적이 일어났다. 화가들도 교회내 성체 공경 신심이 급속도로 확산되던 12세기 이후부터 성체성사를 주제로 성화를 즐겨 그리기 시작했다.
▨ 얀 다비즈 데 헴, '꽃에 둘러싸인 성찬례'
(1648년, 비엔나 예술사 박물관)
작품'꽃에 둘러싸인 성찬례'는 17세기 바로크 시대 네덜란드의 대표적 정물화가 얀 다비즈 데 헴(Jan Davidsz de Heem, 1606~1684)이 1648년에 완성했다.
얀 다비즈 데 헴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17세기 초ㆍ중반은 교회사적으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대응해 가톨릭교회 내에서 교회의 내적 쇄신을 위한 '반종교개혁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아울러 가톨릭과 개신교 왕조간 '30년 전쟁'이 이 시기에 일어났다. 이처럼 가톨릭과 개신교간 대립이 팽팽할 때 가톨릭 신자 화가들은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개신교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성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성찬례'그림을 종종 발표했다. 얀 다비즈 데 헴의 작품도 이런 의미에서 그려진 그림이다.
얀 다비즈 데 헴은 바로크 화풍 작가답게 극단적 명압법을 이용한다. 주제를 배경과 분리해 단순한 정물화를 그렸지만 역동적 느낌을 준다. 작품 정중앙에는 성체와 성혈이 든 성작을 배치했다. 성체성사를 거행하지 않는 프로테스탄트에 대항해 성체와 성혈을 가장 두드러진 곳에 둔 것이다. 사방으로 빛을 발하고 있는 성체 한 가운데에는 십자가에 못박혀 수난하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성혈이 든 성작 아래로 포도 덩굴이 좌우로 뻗어나와 성체와 성혈을 보호하듯 감싸고 있다. 포도 덩굴 끝에서 고운 밀이삭 다발이 나오고 그 위에 흠없이 잘익은 포도가 풍성하게 맺혀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한 이후 모든 세기에 걸쳐 끝없이 매순간 봉헌해온 성찬례의 영속성을 표현하고 있다. 또 그림 왼편에 있는 한 마리 나비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
▨ 주세페 베르밀리오, '최후의 만찬'
(1622년, 밀라노 대주교 화랑)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한 성화 작품은 대체로 예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는 순간이나 유다의 배신을 예고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인으로 17세기 바로크 시대때 활동했던 주세페 베르밀리오(Giuseppe Vermiglio, 1582~1635)가 1622년에 그린 '최후의 만찬'작품도 위의 도식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배경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들고 있는 큰 이층 방(마르 14,15)이다. 명암 대비로 정교하게 처리한 원근법으로 인해 실내가 더 뒤로 연장돼 있는 듯한 느낌이다. 창밖으로 예루살렘 시가지가 평화롭게 보인다. 시중들이 커다란 빵을 나르는 것으로 보아 막 만찬이 시작된 듯하다.
만찬 식탁 한가운데에는 곧 닥쳐올 수난을 예고라도 하듯 붉은 옷을 입은 예수가 앉아 있다. 예수를 중심으로 12제자가 둘러 앉아 있다. 최후의 만찬 그림 도식은 예수의 좌우에 항상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배치한다. 베르밀리오 작품도 마찬가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의 오른편에 진홍색 옷을 입은 청년 요한은 예수 어깨에 기대어 앉아 있다.
예수 왼편에 서 있는 베드로는 요한에게 손짓으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고 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에 놀라 서로 얼굴을 맞대며 웅성대고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예수와 사선으로 마주 앉아 있는 이스카리웃의 아들 유다는 얼굴을 돌리며 예수를 팔아넘길 대가로 받은 돈 주머니를 허리춤에 감추고 있다.
식탁 아래에서 으르렁대고 있는 개와 고양이는 불화와 적대을 상징한다. 베르밀리오 생존 당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신자간에 팽배했던 반목과 대립을 희화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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