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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사도신경이야기

나는 믿는다, 하느님을

by 세포네 2006. 2. 20.

“나는 믿는다, 나의 변호인이 살아 있음을! 나의 후견인이 마침내 땅 위에 나타나리라”(욥기 19,25).
이는 욥이 고통 속에서 외쳤던 말입니다. 이것이 욥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재산, 자녀, 가축들 마침내는 자신의 몸뚱아리에까지 찾아온 ‘날벼락’을 보고 욥의 친구들이 욥을 위로해 준답시고 가뜩이나 억울한 속만 더 뒤집어놨습니다. “그것은 필경 죄 값임에 틀림이 없으니 하느님께 이실직고하고 용서를 빌게나!” 하고 욥을 죄인 취급했던 것입니다. 욥은 아무리 뒤져봐도 집히는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죄다 자신을 죄인으로 손가락질해도 하느님만은 자신의 무죄함을 알고 계시며 언젠가는 자신의 의로움을 입증해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저렇게 소리쳤던 것입니다. 욥의 신앙 고백에는 욥의 몸부림이 실려 있습니다. 조금만 머물러서 되새김해 보면, 이 짧은 신앙 고백에 그의 현재와 미래가, 그의 삶 전체가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크레도 인 데움(라: Credo in Deum)! 나는 믿나이다, 하느님을!
사도신경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바로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의 창조주’(라: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oeli et terrae)입니다. 우리말에서는 이것이 뭉뚱그려져서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로 번역되었습니다. (중략) 그런데 “나는 믿나이다. 하느님 곧 전능하신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를”이라고 번역해야 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즉, 내가 믿는 분이 하느님이신데 그분은 이러저러한 분이라고 그분의 속성을 부가적(附加的)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원문대로 번역을 해보면, 문장 구조가 욥기의 신앙 고백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믿나이다, …을” 뿐만 아니라 고백하는 내용도 거의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사나 묵주기도 때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우리의 삶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고 건성으로 중얼거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욥의 신앙 고백에 욥의 삶의 무게가 실렸듯이, “나는 믿나이다, 하느님을” 이라고 하는 우리의 신앙 고백에도 우리의 삶의 무게가 실려야 합니다. 즉, 내 삶의 온갖 물음, 회의, 실패, 절망 등에 대한 대답이요 대안이요 보루로서 하느님이 고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는 무엇을 믿는가」1권, 124-125쪽)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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