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를 올바로 이해하는데 꼭 알아두어야 할 두 번째 원리는 ‘매개의 원리’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성사관(聖事觀)이 개신교의 그것과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 바로 이 원리입니다.
개신 교회에서는 성사가 단지 상징적인 의미만
지닌다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면 성체성사에서 ‘빵’과 ‘포도주’는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할 뿐이지 결코 실제적으로 몸과 피가 되지는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는 성사는 그저 표징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표징이 나타내는 실재, 곧 구원의
은총을 실제로 베풀어 준다고 믿습니다. 이를 우리는 ‘매개(媒介)의 원리’라고 부릅니다.
한마디로 성사가 중요한 것은 이 성사가
하느님의 역사(役事)하심을 매개해 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성사적 행위 가운데 신앙의 대상으로만 현존하지 않고 그 행위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능동적으로 성취하십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단지 양심 안에서만 또 의식의 내적 성찰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성사적 행위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일 뿐 아니라 육체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 육체의 한계로 인해서 직접적인 통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의
이해력을 위해 매개를 필요로 하십니다. 이것이 결국 성사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이 매개를 마술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판에 박은
성사 행위를 통해 하느님이 ‘짠!’ 하고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성모님과 함께 기도드리는 묵주의 9일 기도
역시 횟수만 채우면 된다는 식의 기복적인 믿음의 소지가 있다며 허례허식의 행위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성사의
제정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과소평가한 데서 연유하는 것입니다.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이며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대를 초월해서
나약한 인간에게 다가오시기 위해 그 제도적 보장책으로서 다음과 같이 명하셨습니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루가
22,19).
이는 당신이 시키는 대로 행하면 당신께서 늘 새롭게 현존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나 다름없는 말씀이었습니다. 결국
‘기념(=성사 집전)’은 하느님의 은총을 ‘매개’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입니다.
<차동엽 신부 저 「여기에 물이 있다」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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