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과 교리]/가톨릭 소식들

천사들, 사랑만 남기고 빈 손으로 떠나다

by 세포네 2005. 12. 6.

소록도에서 43년 봉사 오스트리아 수녀 2명 고향으로 돌아가

 

◀  21일 소록도에서 나와 출국 인사를 하러 온 '벽안의 천사들'에게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가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왼쪽부터 마가렛 수녀, 최 대주교, 윤공희 대주교, 마리안느 수녀, 김희중 주교.

 

 

 "이럴수가…. 한 마디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시다니."

 11월21일 소록도 주민들은 하루종일 슬픔에 휩싸였다.

 무려 43년 동안 자신들과 동고동락한 '벽안(碧眼)의 천사' 마리안느(Marianne Stoe ger) 수녀와 마가렛(Margreth Pissarek) 수녀가 이른 아침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날 두 수녀가 고향 오스트리아로 돌아가기 위해 아침 일찍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섬을 떠났다는 소식을 해가 중천에 떴을 때야 들었다.

 주민들은 "보답은 커녕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못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성당에 모여 두 수녀를 위한 밤샘기도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지난 62년 28살 젊은 나이에 소록도에 들어온 그리스도왕의 시녀회 소속 두 수녀.

 두 수녀의 봉사활동을 소개하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신문ㆍ방송사 기자들이 소록도에 들어가 접촉을 시도했지만 인터뷰는 커녕 사진 한 장 못 건져 나왔다. 두 수녀는 그토록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떠난다는 말을 미리 하지 않은 이유도 주민들에게 이별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 주기 위해서였다.

 한 측근에 따르면, 두 수녀는 육지로 나오는 배에서 소록도가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며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43년 생활을 정리한 짐이라곤 낡은 여행가방이 전부였다.

 마리안느 수녀는 "43년전 부모 형제를 떠나 소록도에 올 때는 기뻐서 웃었는데 막상 떠나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 할머니와 할아버지들한테 사랑과 존경을 받은 것만으로도 (보상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두 수녀는 60년대 초부터 모국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에서 보내준 의약품과 지원금 등으로 환우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지원금은 주로 쓰러져가는 초가를 현대식 주택으로 개량하는 데 썼다. 그 때는 한센병 환우들에 대한 국내 관심이 전무하다시피한 시절이었다.

 또 환우들 장애교정수술을 주선하고, 물리치료기를 도입해 재활의지를 북돋아 줬다. 한센병 자녀 영아원운영 및 보육사업, 재활치료와 계몽, 자활정착사업 등의 공적을 인정받아 국민포장(72년)과 표창장(83년), 국민훈장모란장(96)을 받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두 수녀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잘 하는 할머니가 됐다. 실제로 주민들은 70이 넘은 두 수녀를 "할매"라고 불렀다.

 소록도병원에 근무하는 김광문(제노비오)씨는 "두 할매는 빗자루가 망가지면 청테이프를 붙여 사용할 만큼 청빈하게 살면서 환우들에게 사랑을 쏟았다"며 "종교를 초월해 사랑의 손길을 내미는 그들은 살아 계신 성모 마리아 모습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두 수녀는 친구와 은인들에게 남긴 편지에서 "이제 우리가 없어도 환우들을 잘 보살펴주는 간호사들이 있기에 마음놓고 떠난다"며 "부족한 외국인에게 보내준 여러분의 사랑과 존경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김상술 명예기자  평화신문 기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