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렛 예수의 삶을 산 영성가, 복자품에 올라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3일 베드로 대성전에서 샤를 드 푸코 등 3위 시복식 후 기도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이날 복자품에 오른 샤를 드 푸코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바티칸시티=CNS
'사막의 성자'라 불리는 예수의 샤를 드 푸코(1858~1916)가 13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복자품에 올랐다.
프랑스 출생의 푸코는 27살에 회심한 뒤 가난하고 겸손된 예수의 나자렛 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봉쇄수도원에 입회하고, 그것도 부족해 나자렛과 사하라 사막에 들어가 은수자적 삶을 산 영성가다.
그의 영성을 따르는 한국 푸코 영성가족으로는 예수의 작은자매들의 우애회
ㆍ예수의 작은형제회ㆍ푸코 재속우애회ㆍ까리따스 사제회ㆍ까리따스 우애회가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날 시복식 직후 연설에서 "푸코는 나자렛 은둔생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겸손을 발견했다"며 "특히 (이슬람 교도들이 있는) 사하라 사막에서의 삶은 우리를 보편적 형제애에 대한 묵상으로 이끈다"고 말했다.
부모를 일찍 여읜 푸코는 젊은 시절을 쾌락과 무질서 속에서 보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 신분으로 북아프리카 반란군 진압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모로코 탐험 중 이슬람 신자들의 깊은 신앙에서 하느님 현존을 본 후 그리스도교 신앙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사건은 나자렛 성지순례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자렛이란 작은 마을에서 가난하고 비천한 목수로 숨어 사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그의 마음에서 특별한 성소의 싹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푸코는 그때 "비천과 무명 속에서 가난한 장인으로 사셨던 우리 주님이 다녔던 나자렛 거리를 걸으며 나 자신이 예감하고 상상했던 삶을 살고 싶은 갈증에 불타고 있다"(1896.6.24)고 고백했다.
그는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입회했으나 더 고독하고 가난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나자렛 열정에 몸살을 앓았다. 수도원을 떠나 클라라수도원에서 3년간 허드렛일을 한 그는 1901년 사제품을 받은 뒤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결국 사하라 타만라셋에 정착해 유목민들의 친구이자 형제가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1916년 한 원주민이 쏜 총에 맞아 눈을 감았다.
그가 남긴 '영적 수기'는 현대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으며 "금세기에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하느님 사람"이란 칭송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는 예수처럼 세상 한가운데서 가난한 사람들과 단순하게 살고 싶어했다. 그래서 수도복도 벗어 던졌다. 또 초대교회처럼 작고 단순한 공동체를 원했다.
세속에서 살되 세속에 물들지 말고, 활동을 하되 관상적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하느님 뜻에 단순하게 자신을 내맡기라는 가르침을 삶을 통해 전해줬다. 예수의 작은자매들의 우애회와 예수의 작은형제회 회원들은 이같은 영성을 따라 평복 차림으로 가난한 이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한편 한국 푸코 영성가족은 13일 성골롬반선교센터에서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주례로 시복기념미사를 봉헌하고 조촐한 축하잔치를 열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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