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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서의인물(구약)

[7] 욕심의 눈으로 세상을 본 롯

by 세포네 2005. 6. 2.

 

롯과 아브라함은 보통의 삼촌과 조카 사이가 아닌 그 이상이었던 것 같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해 떠날 때부터 항상 롯과 함께였다. 흉년이 들어 이집트로 피난 갔을 때에도 롯이 동행했다. 아브라함과 동고동락을 함께한 셈이다. 아무리 부모 형제 사이라도 함께 살지 않으면 정이 들지 않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에게 롯은 자식 못지 않은 조카였을 것이다.
"롯아, 너는 나의 아들과 같다. 그러니 나를 친아버지처럼 의지하고 항상 내 곁에 있어주렴…."

"아브라함 삼촌, 저에게 피붙이라곤 삼촌밖에 없습니다. 삼촌과 함께라면 세상 끝까지라도 함께하겠습니다…."

롯은 자신을 거두어주는 삼촌 아브라함이 친아버지처럼 고마웠을 것이다.

부자지간처럼 정답게 지내던 아브라함과 롯 사이에 재산(양떼와 소, 노비 등)이 많아지자 문제가 생긴다.

우선 그들이 데리고 있는 목자들 사이에서 다툼이 생겼다. 인생사가 보통 그렇다. 아무리 가까운 인간관계라도 재물이 많아지면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아브라함과 롯의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식솔들의 싸움이 잦아지면서 틈새가 벌어졌다. 분쟁이 반복되면 동거보다는 분가하는 것이 지혜로울 때가 있다.

아브라함과 롯은 서로 힘을 합해야만 간신히 살 수 있었던 과거의 가난했던 시절엔 오히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부자가 된 다음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조카와 결별하려고 작정한다. 아무리 자기 품에 두려고 노력해도 롯이 더 이상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컸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롯아, 너와 나는 한 핏줄이 아니냐? 네 목자와 내 목자들이 싸워서야 되겠니. 따로 나가 독립해서 살림을 차려라. 네 앞에 얼마든지 땅이 있으니 네가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어디든지 먼저 차지하려무나. 나머지는 내가 가질테니…."

"삼촌, 내가 삼촌을 떠나 살다니요. 말도 안됩니다. 어떻게든지 내 목자들을 설득해서 삼촌과 함께 있겠습니다."

오랫동안 삼촌의 그늘에서 살던 롯이 분가해서 혼자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롯도 나이가 들고, 재물도 늘어가면서 독립하려는 마음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보통 어느 정도의 능력이 주어지면 자유롭게 독립해서 살기를 원한다.

아브라함이 자꾸 분가하기를 권하자 롯의 마음에도 욕심이 생겼다.
"삼촌, 정 그러시다면 제가 요르단 분지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롯이 보기에 요르단 분지는 소알까지 물이 넉넉하여 아주 좋은 땅이었다. 롯은 우선 더 좋고, 아름답고, 풍요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 집착했다.
롯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롯의 욕심은 판단을 흐리게 했다. 겉으로 화려한 소돔은 실제로는 죄가 범람하는 곳이었다. 롯의 선택은 고통의 시작이었다. 소돔땅에서 전쟁과 약탈행위가 일어나면서 롯은 포로로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가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재물도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소돔 땅은 하느님의 진노로 유황불의 심판을 받아 불살라졌다.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 했던가! 소돔 땅을 빠져나오던 롯의 아내는 자신의 재물과 땅이 못내 아쉬워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었다. 롯이 보기에 좋아 보였던 것, 자신이 소유하려했던 모든 것이 다 사라져버렸다.

롯은 욕심과 타락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았다. 그 결과 실패와 고통의 길을 재촉했던 것이다.
인생에서 보이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쩌면 어린 왕자의 작가인 생텍쥐페리(1900~44)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욕심으로 인해 마음의 눈이 어두워진다. 그래서 많은 경우 중요한 것은 잊고 그저 껍데기에 집착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나는 세상을 볼 때 마음의 눈으로 보는가? 영적인 눈으로 보고 있는가?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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