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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서의인물(구약)

[6] 자신의 자리를 망각한 하갈

by 세포네 2005. 6. 2.

 

사라는 아브라함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지 않자, 이집트 노예인 하갈을 남편의 침실로 들여보냈다.
사라가 생각하기에 몸종들 중에서 하갈은 착하고 순종적이라 아이를 낳은 후에도 자신의 말을 잘 들을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드디어 하갈이 잉태하자 사라는 자신의 계획대로 되어 몹시 흐뭇했다. “하갈아, 너무너무 수고했다. 이제부터 일도 하지 말고 몸조리 잘 하거라. 우리 집안의 대를 이을 튼튼한 아들을 낳아주렴…."

“주인 마님, 이 비천한 몸종을 사랑으로 대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 하해와 같은 은혜를 어찌 갚겠습니까?"

하갈도 처음에는 주인의 환대가 눈물나게 고마웠을 것이다. 그동안 열심히 일하고 고생한 게 드디어 보람이 있었다. 지난 세월이 주마등같이 지나갔다. 고향 이집트를 떠나오던 일, 타향에서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상처받았던 일, 배고프고 굶주렸던 일, 아브라함의 집에 몸종으로 들어왔던 날….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라가 자신을 불렀던 것이다. “하갈, 내 남편의 아들을 하나 낳아다오. 그러면 너에게 큰상을 내려주마…." 하갈은 그 순간 자신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시간이 지나 하갈의 몸에 태기가 생겼다. 그러자 아브라함과 사라는 몹시 기뻐했다. 그리고 임신한 하갈은 아브라함이 자신을 그전보다 더 끔찍이 생각해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얘야, 뭐 먹고 싶은 것은 없니? 네 몸속에 있는 아이는 우리 집안의 상속자이니 몸조심하거라. 무엇이든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보렴. 옷을 몇벌 더 사줄까? 아니면 반지나 장신구를 사줄까?"

늙은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이를 밴 어린 하갈이 무척 귀엽고 대견했을 것이다.

아들만 낳아주면 하갈에게 무엇을 준들 아까우랴! 아브라함은 새로 태어날 자신의 아들을 흡족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하갈은 교만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아들만 낳으면 아무도 나를 업신여기지 못할 거야. 사실 그동안 나는 너무도 당하면서 살았어. 아브라함 영감은 나를 사라보다 더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있잖아. 사실 내가 부인이나 다름없지. 그런데도 사라는 아직까지 나를 자기 몸종 부리듯이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있어. 어디 아들만 낳으면 두고보자…."

점차 하갈이 사라를 대하는 태도가 점점 불손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사라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삶에 걸림돌이 되었을까? 하갈은 자신의 분수를 지키지 못했다.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변했다.

하갈은 이젠 자신이 주인인 양 설치고 있었다. 이러한 하갈의 태도는 곧 화를 불렀다. 멸시를 당한 사라는 아브라함과 담판을 벌인다. 결국 아브라함은 마음이 아팠지만 사라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라, 당신의 여종이니 당신 마음대로 하구려. 나는 당신 뜻을 따르겠오…."

하갈은 교만한 행동을 한 값을 톡톡히 치렀다. 하갈은 사라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만삭의 몸을 이끌고 자신의 고향 이집트 쪽으로 도망쳤다. 그녀는 주인을 멸시한 죄값을 치르면서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라에 대한 원망, 아브라함에 대한 실망감, 자신의 인생에 대한 슬픔과 회한이 뒤섞여 광야를 헤맸다. 지쳐서 샘물 곁에 쓰러진 하갈에게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났다.

“자라의 여종 하갈아, 너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천사의 질문이 하갈의 가슴을 쳤다. "너는 누구인가?"

하갈은 자신의 짧은 인생을 돌아보았다. 자신의 자리가 여종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잠시 잊어버린 자신의 자리,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분수없이 교만하게 행동한 자신을 스쳐 지나가듯이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나의 여주인 사라를 피하여 도망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자라의 학대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 자신의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하느님의 천사는 “다시 네 주인에게 돌아가라. 그곳이 네가 있을 자리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녀는 아브라함의 집으로 돌아와 들나귀와 같은 이스마엘을 낳는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자리가 있다.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이탈할 때 인간은 고통과 시련과 멸시의 자리에 서게 된다. 과연 나는 나의 올바른 자리에 늘 서있는가? 하느님은 이 자리에서 내가 무엇을 하길 원하시는가?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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