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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서의인물(구약)

[5] 불임의 고통을 겪는 사라

by 세포네 2005. 6. 2.

 

하느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신다. “저 하늘의 셀 수 없는 별들을 보아라. 저 별보다 더 많은 자손을 너에게 주겠다. 큰 복을 내리겠다." 그러자 아브람이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 "하느님, 많은 자손, 큰 복은 고사하고 아들 하나도 없는데 복이며 은총이 무슨 소용입니까?"
자손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연결하고,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 중 하나다. 예로부터 자녀를 생산하여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은 중요한 인생사였다. 우리나라도 옛날에 칠거지악(七去之惡) 중 하나로 불임여성을 단죄했다. 어찌 보면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 여자의 잘못만도 아닌데 말이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은 소박을 맞거나 평생 마음의 상처를 안고 그늘진 삶을 살아야 했다. 오늘날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불임 때문에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이들이 없지 않다.

어쨌든 자손을 많이 주겠다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아브라함 부부는 그러나 쉽게 아이를 갖지 못했다.

그들은 점점 늙어가면서 초조해졌다. 겉으로 뭐라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사라는 마음이 불편하고 민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보, 미안해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이가 안 생기니 어쩌면 좋을까요? "그녀는 남편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소실을 들이기로 작정했다. 더 이상 남편과 친지들의 따가운 눈총과 기대를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이 자식을 낳지 못해 소실을 들일 수밖에 없는 사라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사라는 하갈이라는 이집트 여종을 골랐다. 그녀는 소실을 선택하기 전 갖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 하갈이라면 마음씨도 곱고 내 말에 잘 복종하니까 나중에 아이를 낳더라도 변하지 않을 거야. 내가 저를 믿어주고 선택했으니 나에게 고마움을 늘 가지고 있을거야.?

물론 사라의 생각은 나중에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여보, 나는 나이도 많이 들어 이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어요. 내가 눈여겨 봐둔 여종 하나가 있으니 당신 소실로 들여 집안의 대를 이읍시다. "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에 처음에는 펄쩍 뛰었을 것이다. 무슨 망측한 소릴, 소실이라니? 아이가 없으면 그만이지.…그런데, 그 여종이 누군데?" 결국 아브라함은 사라의 뜻대로 하갈과 동침하여 아이를 잉태한다. 모든 것이 사라의 생각대로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겼다. 처음에 고분고분 말을 잘 듣던 하갈이 아들을 잉태하자 사라를 멸시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 했던가?

사라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하갈을 내버려두는 남편의 처사에도 격분했다. 애초부터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다른 이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당신이 더 나빠요. 저 배은망덕한 하갈이 나를 멸시하고 구박하는 것도 다 당신이 저 계집을 싸고도니까 그런 것 아니에요…. 다 당신 탓이라고요!"
“하갈,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해 주었는데 나를 멸시해.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도 유분수지, 너 죽고 나 죽자…."
결국 아브라함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임신한 하갈은 비참하게 내쫓기고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도 남은 건 상처뿐이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이 일을 이렇게 망쳐버렸단 말인가?
사라는 자신의 상처를 다시 하갈을 학대하는 것으로 풀으려 했다. 사라는 자신의 너그러운 사랑이 욕과 멸시로 되돌아오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사라도 자신의 욕심을 위해 하갈을 이용한 것이다.

그녀의 더 근본적인 불행의 원인은 하느님의 약속을 믿지 않은 것이었다. 단지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했던 것이 화를 자초한 셈이 되어버렸다.
우리도 욕과 멸시를 받을 때 단지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지 살펴보자. 매일같이 ‘제 탓이오'를 외치는 이유를 깨달아야 하겠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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