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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실]/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100선

[81] 시벨리우스 / 교향시 핀란디아

by 세포네 2023. 9. 28.


       Symphonic Poem Finlandia Op.26
           시벨리우스 / 교향시 '핀란디아'
           Jean Sibelius (1865∼1957) 




시벨리우스 / 교향시 '핀란디아'
조국 핀란드에 대한 시벨리우스의 열렬한 찬가로서 그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명곡이다. 핀란드는 약소 국가로 13세기 경부터 19세기 초까지는 스웨덴, 그 이후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핀란드의 역사는 항상 스웨덴과 러시아의 공포에 노출되는 운명에 있었다. 이 곡이 쓰여진 당시에도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었고 그 압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무수한 호수와 삼림이 엮어내는 아름다운 조국의 자연을 찬양한 이 교향시는 곤경에 허덕이는 전국민의 애국심을 한껏 부추기는 애국가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인 배려에서 걸핏하면 연주금지라는 사태까지 낳곤 했었다. 러시아의 핀란드에 대한 압박이 심하게 되자 애국적 저항 운동이 불붙게 된 시기에 34세의 청년 시벨리우스는 1899년 애국 찬가인이 작품을 작곡하여 민족 정신을 고취시켰다.


1. Allegretto
2. Tempo andante, ma rubato
3. Vivacissimo
4. Finale


작품해설

곡은 안단테 소스테누토의 서주로 시작된다. 우선 금관 악기가 연주하는 육중한 '고난의 동기'로 개시된다. 이 비극적인 동기를 받아서 목관과 현에 민중의 비탄을 상징하는 듯한 선율이 연주되지만, 그 후반은 점점 격렬하게 고조 되어, 이윽고 단호한 곡조로 전환, 알레그로 모데라토의 서주의 후반으로 들어간다. 투쟁하라고 외치는 동기가 팀파니와 나팔 등으로 날카롭게 울리고, 곡 첫머리의 '고난의 동기'가 이어지는데, 현악기에서는 약동적인 음형이 용솟음치듯 나와서, 이윽고 '투쟁에의 절규 제2의 동기'가 저음에서 힘차게 연주되자, 이를 계기로 곡은 폭발적으로 고조된 힘찬 주부로 들어간다.
여기서는 두개의 '추쟁에의 절규'의 모티브가 서로 짜 맞추어져서 곡의 흥취를 돋구는데, 또 하나의 짧고 새로운 동기, 탄짼베르에 의하면'축제에의 동기'도 곁들여져서, 압정에 대한 투쟁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이 격렬한 투쟁이 클라이막스를 구축하는데, 주부의 여기 까지는 교대로 되풀이 된다. 그후 크레셴도로 썰물이 빠지듯이 멀어지면, 이어서 최초의 목관 악기에 이어서 현에 의한 찬가풍의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온다. 이 주제는 민요풍의 정취를 지니는 것이기도 하여서, 민요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생각된 일도 있었으나 영국의 시벨리우스 연구가 로자 뉴마치(Rosa Newmarch,1857∼ 1940)가 작곡자에게 물었을 때 작곡자는 부정 했다고 한다.
개설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가사를 붙여서 '핀란디아 찬가'라 하여 노래로 불려지는 것은, 극음악으로서 이 작품이 발표된 후에, 시인 코스켄니에미가 이 부분에 가사를 끼워 넣은 것이므로, 원래 이 선율은 민요는 아니라고 하는 쪽이 맞다. 이 평화로운 찬가가 두 번 연주된 뒤, 재차 두 개의 '투쟁에의 모티브'와 '축제의 모티브' 가 곡의 고조를 부추겨, 종말의 클라이막스 속에, 후에 '핀란디아 찬가'로 된 선율의 일부를, 금관 악기가 고음으로 연주하여 힘찬 피날레가 시작된다.

잔 시벨리우스 [Jean Sibelius, 1865 ~1957]

본명 Johan Julius Christian Sibelius. 헤멘린나 출생. 9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15세 때부터는 바이올린과 작곡법을 배워 이 무렵부터 점차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가족들은 음악가가 되려는 그의 희망을 반대하여 1885년 헬싱키대학에 입학, 법률을 전공하는 사이사이 헬싱키음악원에서 베겔리우스에게 음악이론과 작곡을 배웠다. 그 후 음악을 전공하기 위하여 대학을 중퇴하고 당시 음악원 교수로 있던 명피아니스트 부조니에게 사사하였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베를린(1889) ·빈(90)에 유학하고, 빈에서는 브람스를 만나 가곡에 호의적인 평을 받았다. 1892년 모교 헬싱키음악원의 작곡과 바이올린교수가 되고, 작곡면에서는 국민적 대서사시 《칼레발라:Kaleval!!a》에 의한 교향시 《크레르보》 《엔사가》, 모음곡 《칼레발라》 등으로 국외에서도 알려지게 되었다. 이어 《투오넬라의 백조》를 비롯한 《4개의 전설》, 교향시 《핀란디아》 《제1교향곡》 등으로 명성을 얻고 1897년에는 국가에서 종신 연금을 주기로 하여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1924년 《제7교향곡》, 이듬해의 교향시 《타피오라》 이후는 거의 작품이 없고, 뇌출혈로 91세의 생애를 마쳤다. 7개의 교향곡 외에도 많은 교향시 ·바이올린협주곡 등이 있고, 《핀란디아》 《투오넬라의 백조》 등이 특히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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