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고로드 화파, <삼위일체>, 1420년경, 목판에 템페라,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러시아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많이 보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려면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위격(位格)으로 계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형상화한다는 것은 힘든 과제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지만 사람의 아들로 세상에 드러내셨기에 화가들은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따라서 화가들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같은 모습을 한 세 사람(혹은 똑같은 천사 모습)으로 묘사하거나, 성부를 영원하신 분임을 나타내기 위해 “연로하신 분”(다니 7,9)으로 나타내거나,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 등으로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깊게 느낄 수 있도록 제작했다.
12~16세기까지 러시아의 노브고로드 시를 중심으로 성화나 벽화를 주로 그렸던 노브고로드 화파에서 제작한 <삼위일체> 이콘에서 성부는 노인으로, 성자는 아이로, 성령은 비둘기로 그려져 있다. 성부이신 하느님께서는 근엄하게 옥좌에 앉아 계신다. 성부는 인간 구원을 위해 성자와 성령을 세상에 파견한 분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다. 따라서 성부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된 것은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는 성부를 상징한다.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는 흰옷을 입은 성부는 오른손을 들어 축복을 주고, 왼손에는 생명의 말씀을 가슴에 안고 있다. 이러한 성부의 축복과 생명의 은총은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성자를 통하여 온 세상에 퍼질 것이다.
성자 예수님은 아이의 모습으로 성부의 무릎에 앉아 있다. 성부께서 파견한 성자는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로 인간으로 강생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며 사흘 만에 부활하신 분이다. 성자의 위치는 마치 어머니의 자궁 안에 머무는 아기처럼 성부와 일치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성자의 생명은 성부와 한 몸을 이루며, 성자는 세상 구원을 위한 희생양으로 파견된다. 성자의 붉은 옷은 사랑과 희생을 상징하는 색으로, 성자 예수님이 구세주로서 자신의 피를 흘리며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상징된다. 성자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해야 할 자신의 앞날을 내다보듯 강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성자를 통해 성부에게서 파견된 성령은 비둘기 형상으로 성자가 성부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성령도 성자의 무릎 위에 있다. 성자는 힘차게 날갯짓하는 성령의 비둘기가 있는 둥근 원을 양손으로 잡고 있다. 이것은 성부가 성자를 품고 있듯이, 성자도 성령을 자신의 몸 안에 품고 있는 모습이다. 성자의 가슴 안에서 비둘기는 활기차게 날갯짓하며 빛을 발산하고 있다. 성령은 원 안에서 강한 생명력을 드러내며 움직이고 있다. 한 획으로 그려지는 원은 시작도 끝도 없으므로 영원성을 말한다. 따라서 성령의 활동은 영원할 것이다. 성부(노인)와 성자(아이)와 성령(비둘기)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른 역할과 활동을 하고 있으나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한 몸을 이루며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일치하신다. 성부 안에 성자가 있고 성자 안에 성령이 함께하고 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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