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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생명의 나무

by 세포네 2016. 6. 19.


파치노 디 보나구이다, <십자가 나무>, 1305-1310, 패널 위에 템페라와 금, 248x151cm, 아카데미아 갤러리, 피렌체, 이탈리아


 커다란 나무 위에 예수님께서 매달려 계신다. 일명 ‘십자가 나무’이다. 십자가 나무는 목재로 잘 다듬어져 만들어진 일반적인 십자가와는 구별되는 형태로, 잎과 꽃, 열매 등이 달려 살아 있는 나무의 모습을 갖춘다. 따라서 십자가 나무는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생명나무의 속성을 가진다. 14세기 신비주의자인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십자가 나무를 “천국의 삶을 꽃피우는 매혹적인 나무”로 묘사하여 낙원의 평화와 관련지어 신성한 나무로도 보았다.

 파치노 디 보나구이다(Pacino di Bonaguida, 1280경-1340)도 십자가를 생명나무로 묘사하고 있다. 1305년경 몬티첼리(Monticelli)의 클라라 수도회에서 보나구이다에게 주문한 <십자가 나무>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장인 보나벤투라(Bonaventura)의 『생명나무(lignum vitae)』(1259)에서 제시한 명상방법에 영향을 받았다. 보나벤투라의 텍스트는 구조적으로 나무 형태를 띠며, 12개의 가지와 48개의 장으로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 등을 언급한다. 이것을 읽는 사람들은 머릿속에 나무를 하나 그리고 명상을 통해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이렇듯 보나벤투라는 그리스도의 삶의 사건들을 따라가는 동안에 믿음의 가지가 자라나고, 신자들은 더욱 더 그리스도를 닮은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는 명상방법을 제시했다.

 커다란 십자가 나무에 예수님이 매달려 계신다. 예수님께서 매달리신 맨 아래쪽에는 인간의 창조와 타락이 묘사되어 있기에, 십자가 나무는 인류의 죄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십자가 나무 아래에는 예언자 에제키엘과 다니엘, 성 프란치스코, 성녀 글라라가 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프란치스코의 두루마리에는 사도 바오로의 고백인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 6,14)라고 적혀 있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명시하고 있다. 에제키엘은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에제 47,12)라는 말씀으로 잎이 시들지 않는 근원으로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다니엘은 십자가 나무의 규모와 위엄을 말하듯 “나무가 더욱 크고 튼튼하게 자라서 높이가 하늘까지 닿으니 세상 끝 어디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었다.”(다니 4,8)고 기록하고 있다.

 줄기로부터 뻗은 왼쪽과 오른쪽 가지는 각각 6개로, 12사도 혹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한다. 그리고 가지들에 달린 47개의 원형 메달 형태의 열매는 예수님의 탄생부터 성장, 수난, 죽음, 부활, 승천 등을 묘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른쪽, 아래로부터 위로 읽어 나가도록 구성된 원형 메달은 마치 성찬식 때 사용되는 성체를 연상케 하여 예수님의 희생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예수님의 희생은 십자가 나무 꼭대기에 자리한 펠리컨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배고픈 새끼들을 지켜보다 자신의 가슴을 쪼아 벌린 뒤 거기에서 흘러넘치는 피로 새끼를 살린다는 펠리컨의 사랑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자신의 피로써 인간의 죄를 구원한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이렇듯 십자가 나무는 예수님께서 희생 제물이 되시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이다.  


“이제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놓아둔다.”(예레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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