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목자>, 3세기, 프레스코, 프리실라 카타콤베, 로마, 이탈리아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의 공간인 카타콤베(Catacombe)를 그들의 염원을 담은 다양한 주제의 그림으로 내부를 장식했다. 벽화나 장식으로 그려진 이미지들에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의 핵심인 종말론적 소망과 부활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었다. 카타콤베를 장식하는 주요 형식은 프레스코로 벽면을 붉은색 띠로 나누어 구간을 만들거나, 거친 붓질로 형상을 그린 로마벽화와 양식적인 면에서 매우 유사했다. 무덤의 입구나 여러 무덤이 있는 묘실 등의 벽면은 거의 회화로 채워졌고, 가끔 대리석 비명이나 간단한 대리석 미장으로 치장되기도 했지만, 벽화는 항상 장식의 필수적인 요소로서 포함되어 있었다.
카타콤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착한 목자>의 모습이다. 수염이 없는 젊은 청년의 얼굴은 그리스 조각에 나타나는 영원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초기 그리스도의 이미지에 중첩한 것이었다. 이렇게 젊은 청년의 모습을 하신 그리스도는 영원한 젊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전지전능함과 초월성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성경에서는 여러 번 목자와 양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목축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거의 자명한 비유로, 목자는 이른 아침부터 양 떼를 데리고 들판으로 나온다. 프리실라 카타콤베에 그려진 <착한 목자>도 양을 이끌고 있다. 수염을 말끔하게 깎은 목자는 짧은 튜닉을 입고 고전적인 동작을 취하고 있다. 나무와 새에게 둘러싸여 있는 목자는 양을 어깨에 지고 있고, 주머니를 메고 지팡이를 들고 있다. 그의 오른손으로는 아래 양들을 인도하고 있다. 지팡이와 그의 손길은 양들을 이끄는 하나의 사랑의 도구이다. 시력이 너무 나쁘므로 방향감각이 없는 양들의 특성상 목자는 소리를 내거나 지팡이로 땅을 치면서 양들을 몰아야 하기 때문이다. 온종일 먹이와 물을 찾아 옮겨 다니는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한다.
좋은 목자란 삯꾼과는 달리 깊은 관심으로 양 떼를 돌보는 양의 주인이어야 한다. 목자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매우 기뻐한다는 비유처럼, 목자는 자신의 양 떼 중 누구라도 길을 잃어버린다면 진정으로 염려하며 집으로 들어오기까지 쉴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목자이시고, 양 떼는 교회인 것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 예수님은 실제로 당신 양들을 위해 십자가 위의 죽음을 통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착한 목자이시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양들을 가장 소중한 보물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다. 마치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라는 말씀처럼 착한 목자의 주변에 있는 두 마리 양의 시선은 약속이라도 한 듯 예수님을 향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이사 40,11)
'[교회와 영성] > 성미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0) | 2016.05.08 |
---|---|
하느님께 받은 사랑 (0) | 2016.04.26 |
새로운 삶의 시작 (0) | 2016.04.10 |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0) | 2016.04.03 |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셨나이다. (0) | 2016.04.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