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와 죽은 이들 모두 동일한 구성원
모든 성인의 통공 교리, 위령성월 이해하는 바탕
세상 떠난 이들 위해 기도하고 자신의 죽음 묵상
▲ 2009년 11월 7일 오후. 경기도 의왕 라자로마을을 찾은 백발의 할머니가 한센병 환우들의 벗으로 헌신한 스위니 신부와 황영희 교수의 묘 앞에서 연도를 바치고 있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다 (히브 9,27).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하는 위령성월을 맞았다. 누구나 한 번은 맞게 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 의미를 되짚어 보는 달이다. 또 이 땅에서의 생을 마감한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지 이웃들을 떠올리고 기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같은 위령성월의 역사적 근거와 진정한 의미는 어떤 것일까. 위령성월을 기해 그 유래와 의의 등을 정리해 본다.
■ 역사
위령성월이 전 교회에 널리 퍼지게 된것은 10세기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98년 클뤼니 수도원 5대 원장이었던 오딜로(Odilo)는 자신의 관할 모든 수도자들에게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날 다음 날인 11월 2일을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의 날로 지내도록 명했다.
이 내용은 신자들에게 전해져 갔고 서방 교회 전역으로 퍼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신자들은 11월 동안 죽은 이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바치게 되었다.
11월은 이러한 배경 속에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성월로 정해지게 됐으며 한국교회 역시 이 같은 교회 전통을 받아들여 11월을 위령성월로 지내게 됐다.
위령성월이 신자들에게 더욱 깊숙이 스며들게 된 것은 교황 비오 9세(1846~1878)와 레오 3세(1878~1903), 그리고 비오 11세(1922~1939)가 위령 성월에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 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선포한 것이 계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사 선포로 인해 위령성월의 신심은 더욱 널리 전파되었고 더불어 11월은 세상을 떠난 부모나 친지의 영혼 특히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를 바치고, 자신의 죽음까지도 뒤돌아 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
■ 죽은 이를 위한 기도
위령성월 중 11월 2일은 교회 전례력에서 모든 죽은 이를 기억하는 날이다. 이날은 무엇보다 아직 연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이 빨리 정화돼 복된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그들을 위해 위령미사를 봉헌하는 날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성인대축일 다음날을 위령의 날로 지내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성인들을 먼저 기념하고 그 다음날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자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관습은 고대 로마시대에도 있었다. 기일에 무덤에 모여 죽은 이를 추도하며 헌주를 하고 음복을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4세기 까지는 일년의 마지막 날로 여겨졌던 2월 중 13~22일 사이에, 가족 중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념하는 위령제(Parentalia)를 지냈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 마지막날인 22일에는 죽은 이를 추모하는 가족행사를 거행하기도 했다.
로마교회는 이러한 관습을 받아들여 4세기부터 베드로좌에 모였고 베드로를 추모하는 예식을 거행했는데 이것은 오늘날까지 베드로 사도좌 축일(2월 22일)로 남아서 전해져 온다.
이에 비해 위령의 날이 공식 전례 축일로 선포된 것은 비교적 상당히 후대에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교 전래 이전에 이교도들이 행한 죽은 이들을 향한 미신적 관습이 오랫동안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중세를 거치며 위령의 날과 관련된 많은 전설도 생겼는데, 예를 들면 위령의 날에 이미 죽은 이들이 살아 있을때 자신에게 나쁘게 대했던 사람들 앞에 도깨비불 두꺼비 마녀 등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전설 등이다.
또한 위령의 날에는 특별한 음식을 먹거나 특별한 놀이를 하는 등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풍습이 내려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묘지까지 본당 공동체가 함께 행진을 하는 서구 본당의 모습이나 가족과 친지들이 있는 무덤을 방문, 꽃과 무덤을 장식하는 관습들이 그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 의미
위령성월을 이해할 수 있는 신학적인 근거는 ‘살아있는 이들이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며 이 기도가 죽은 이에게 도움이 된다’는 전통 교리에서 찾아질 수 있다.
무엇보다 ‘모든 성인의 통공 교리’는 신자들이 위령성월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된다. 즉 하느님 나라는 사랑이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된 공동체로서 이 공동체의 주인이며 시작도 끝도 없으신 하느님 앞에서 시간은 무의미한 것이고 이 안에서는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도 살아있는 이들도 동일한 구성원이라는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이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라는 유대감을 통해 살아있는 이들은 연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며 또한 이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있는 성인들도 세상에 있는 살아있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이같이 산 이와 죽은 이들의 통교가 가능하다는 면에서 위령기도가 가능한 것이며 아울러 위령성월도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위령성월에 대한 보다 뚜렷한 신학적 근거는 1245년 제1차 리옹 공의회에서 선포된 ‘연옥(Purgatorium)에 대한 교리’로 꼽힌다. 리옹 공의회 이후 교회는 연옥 존재에 관한 교의를 지속적으로 확인해 왔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 자녀로 새로 태어난 보통 사람들이 세례후 죄를 범했을 때, 그 죄를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받으면 범한 죄(Peccantum)와 영벌은 없어 질 수 있으나 잠벌은 남게 되며 이 잠벌은 보속을 통해야만 탕감 받을 수 있다.
이 세상에서 행해야 하는 보속이 있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를 위해 치러야할 보속이 있다. 그 보속을 치르는 곳이 연옥이고 또 죄를 씻는 정화의 장소가 연옥이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속죄를 위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지상에 살아있는 사람들은 기도와 자선 행위 및 미사 봉헌 등으로 이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위령성월은 연옥 영혼을 위한 특별한 기도의 시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에서는 위령성월 중인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열심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신자들은 연옥에 있는 이들에게만 양도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알리고 있다.
▲ 위령성월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기이다. 사진은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 주례로 ‘호국영령을 위한 합동 위령미사’를 봉헌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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